[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다산 발자취 따라 걷는 차와 정원의 길

다산초당의 해설을 듣는 율곡연구원 답사반.
다산초당의 해설을 듣는 율곡연구원 답사반.

 백운동 원림이 호남의 3대 원림으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실렸었더라면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졌을 터인데, 이곳은 패싱 되었었다. 그리고 이곳을 관광개발의 대상지로 삼으려던 강진군이 정민 교수로부터 자문을 받으면서 원림 고유의 가치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2006년에서 2015년까지 백운동은 숨가쁘게 호명되었던 것이다.

 담양의 소쇄원이 하서 김인후의 48영이라는 시를 통해 공감각적 배경과 실체 사이의 맥락을 잡을 수 있었고, 이를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가 있으며, 이를 오롯히 보존해온 15대에 걸친 후손의 노력이 있었다면 백운동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백운동 12경이라는 시와 초의 선사를 통해 그리게 했다는 ‘백운동도’가 전해지고 13대에 걸친 후손의 애틋한 정성이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듯 비슷한 정경들이 두 민간원림 사이에 공통분모처럼 자리한다. 당나라 이덕유의 평천장 고사처럼 “이 땅의 어느곳 하나 나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니 누구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말라”던 이야기도 공통분모처럼 안고 있는 것이다.

백운동원림의 삼문.
백운동원림의 삼문.

 백운동 12경, 남도 정원의 미학을 걷다

 우리 일행은 12경의 풍경을 찾아가 보았다. 가장 먼저 백운동원림에서 보이는 월출산 옥판봉의 모습이다. 뾰족한 산봉의 암릉이 솟아있는 정경이 ‘옥판상기’라고 하는 구절이다.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을 원림에서 차경(경관을 빌려다 봄)한 정경인데 아쉽게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2경은 산다경이라 불리는 경관 즉, 동백나무 숲을 헤집고 들어오는 경관 ‘유차성음’의 구간이다. 몇백년은 됨직한 커다란 동백나무 터널을 담아낸 것인데, 동백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 유차 혹은 산다라고 칭한다.

 제3경은 벌써 열매를 매달고 있는 매화를 이야기한 ‘백매암향’ 구간이다. 백그루의 홍매화를 백매오라고 했다는 것인데, 그 나무가 뿜어낸 매화향은 이곳 골짜기를 다 덮고도 남았을 상상이 든다. 제4경은 ‘풍리홍폭’이다. 나는 문득 강릉 경포대의 달빛을 두고 이야기한 하늘의 달, 호수의 달, 술잔의 달, 두 눈속의 달을 이야기한 것과 빗대어 폭포의 물에 단풍빛이 비추고, 단풍나무에 우리의 얼굴에 어리는 붉은 단풍의 가을을 말씀 드렸다.

 제5경은 집 밖의 계곡물을 끌어와 마당으로 아홉구비 돌아가게 하는 유상곡수연을 연상케 한 ‘곡수유상’의 정경이다. 술잔을 띄우고 그 잔이 내 앞에 멈추면 시를 지어야 하거나, 시창을 불러야 하거나, 무언가의 과제를 해야 하는 유희의 공간이란 점을 포석정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소쇄원 십장폭포 앞에도 이 모습이 존재하며, 복류전배 라는 구절이 이를 입증한다. 제6경은 ‘창벽염주’로 시냇가에 솟아있는 창하벽을 지칭한다. 창하벽은 바위가 이슬을 머금고 푸른 이끼를 키워낸 곳에 붉은 색으로 글씨를 써 둔 것을 말한다. 바위는 그대로인데, 글씨는 자취를 감추었다. 다산초당에 정석이란 글을 바위에 새긴것과 대조되는 느낌과 소쇄원에 편석창선이라는 구절하고 조응하는 것을 말씀 드렸다. 편편한 바위에 이끼들이 자란 모습을 담아낸 시에서 늘 변하지 않는 바위와 사계절 푸르름을 간직한 이끼가 모두 선비의 마음과 같은 것이란 내용이 읽혀져서다.

매화동산에서 본 취미선방.
매화동산에서 본 취미선방.

 제7경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의 풍광을 담은 ‘유강홍린’이다. 정선대라는 초정 옆으로 소나무의 철갑을 용의 비늘에 빗대어 이야기한 구절이다. 비가 그치고 운무가 일고 있는 날, 신선이 머무는 곳에 용이 비상하는 듯한 상상을 해 봄직했다. 제8경은 ‘화계모란’이다. 꽃을 심은 계단을 화계라 하니 그곳에 모란이 줄지어 씨앗을 여물게 하고 있었다. 모란체라고 표지판에 써 있다.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의 태동도 이곳과 닿아있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모란이나 작약과 같은 꽃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고 양화소록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부에 대한 바람은 변함이 없음은 인지상정이나 보다.

 제9경은 ‘십홀선방’이다. 십홀은 아주 작은 크기를 말하는 것이고, 선방은 소쇄원의 초려와 같이 조촐한 집을 뜻한다. 작고 조촐한 취미선방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루에 차를 내어 마실 공간이 있고, 그 마루가 갈수록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본다. 이제 어엿한 남도의 명소로 백운동 원림이 자리 잡았음을 알게한다. 제10경은 ‘홍라보장’이다. 가을이 되어 단풍이 원림의 화단에서 장막처럼 감싸고 있는 모습을 풍단이라 하며 노래한 것이다. 제11경은 초가 정자인 정선대가 품고 있는 정경을 ‘선대봉출’이라 했다. 즉, 정선대에서 바라보이는 옥판봉의 돌올한 모습까지를 얘기한 구절이다. 마지막인 제12경은 “운당천운‘으로 왕대나무가 원림의 한켠에 숲을 형성하며 하늘을 뚫을 기세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말한다. 운당원이라고 명기되어 있는데 죽림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는 모습은 옛적 풍경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음을 표징하는 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왕대나무 숲이란 뜻의 운당원 길.
왕대나무 숲이란 뜻의 운당원 길.

 이렇게 축축한 날임에도 하나 하나씩 익혀가면서 가는 답사여행은 일반적인 유희의 여행보다는 수고스러움이 따른다. 안내를 맡아서 하는 내 입장에서도 20여분의 선생님들이 과연 귀담아 들을 것인지 아닌지 매양 흐름을 살피면서 입을 열 것인지 침묵할 것인지 고민의 연속이다. 다행히 전날 소쇄원을 방문하셨던 터라 그곳에서 강릉의 선교장을 비롯한 정원문화와 남도 정원문화의 차이는 이미 아셨을 것이라 안심하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차문화의 뿌리, 백운옥판차 이야기

 이렇게 12경으로 대표되는 경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며 한편으로 다산선생님의 제자였던 원림의 후손 이시헌 선생이 다신계의 일원으로 스승에게 차를 공급하고, 이를 이어받은 후손이 일제 강점기 우리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국내 최초로 백운옥판차를 생산하고 유통했던 이한영선생님으로 그리고 지금은 차문화원을 운영하는 이현정원장님에 관한 이야기로 이으며 대숲길을 따라 탁 트인 차밭으로 나왔다. 이제 우리 발길은 다산 초당으로 향했다. 

 차나무가 지천인 산이 다산인 곳에 초당을 만들고 후학을 양성하고, 집필에 몰두했던 그곳 초당으로 오르는 길은 축축한 기운이 가득했다. 장마철의 여행길이 습하고 눅눅한 것이 당연한 것인데, 연배들이 계셔서 노독이라도 오실까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더 연약한 것이 초당 오르는 길에 느껴졌다. 정호승시인이 뿌리의 길이라고 명명한 곳, 80년대 말 곽재구시인의 ”다사초당 가는 길“이라는 시를 읽으며 그토록 가 보고 싶어했던 그곳이었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글과 건물의 조화.
백련사 대웅보전의 글과 건물의 조화.

 유배지에서 꽃핀 학문과 차의 정신

 초당에 오르니 문화해설사 선생님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를 쳐다 보신다. 이쯤되면 내가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차례다 싶어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다. 강릉의 율곡연구원에서 답사여행 오신분들이니 잘 부탁 드린다라고 바톤을 인계했다. 역시 전문가 답게 다산선생님의 이곳 초당 생활을 잘 정리해 주신다. 1998년 도입된 문화유산해설사 제도가 정착되면서 가진 기능은 지역간 혹은 개인간 차이가 있지만 이 땅의 삶의 결들을 문화유산속에서 어떻게 간직해 오고 또 우리는 무엇을 배워가야 할 것인지 쉽고 소상하게 공유하는 전기를 마련했음을 상기하게 되었다. 18년의 유배생활과 18명의 제자들, 다신계를 통해 끈끈한 사제간의 정리를 가졌던 그분들에 대한 역사가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깊게 각인되는 자리였다. 해설이 끝나고, 우리는 정석이라 새긴 글을 둘러보고, 천일각에서 다산의 형 정약전과의 그리움이 제자인 이강회를 통해 자산어보, 유암총서란 책을 통해 다시 살아왔음을 말씀 드렸다. 이제 일행은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초의선사상을 통해 복기한 다산과 초의의 길.
초의선사상을 통해 복기한 다산과 초의의 길.

 백련사 가는 길, 느린 걸음의 사색

 걸어서 백련사까지 다산선생이 교류했던 길을 가고파하는 분과 그냥 초당에서 내려가시는 분으로. 나는 오랜만에 백련사까지 가는 길에 합류했다. 곳곳에 차나무가 자생하고, 이제는 황칠나무가 식재되어 사철 푸르름을 간직한 곳으로 변하는 만덕산 자락의 다산길을 혜장스님과 초의선사와 다산선생이 걸었던 것처럼 느린 듯 가볍게 그렇게 걸었다. 드디어 백련사에 이르러 모처럼 경내를 다 돌아보았다. 백련결사의 땅, 강건한 원교 이광사의 글이 백련사의 선풍을 그대로 드러낸 듯 하다. 만경루에서 구강포를 바라보며 환하게 트인 경관 아래 수많은 백성들의 신산한 삶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어루만지고자 했던 다산선생의 결기가 또 다가왔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저물어 가고, 영암으로 돌아와 읍내에서 저녁식사와 곁들여 술한잔 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배움여행이 즐거우셨다는 말씀에 다음날의 해남 대흥사도 잘 모시는 것을 약조하고 숙소인 구림한옥스테이에서 편하게 주무셔라 인사 드렸다.

 마지막 정찰, 대흥사서 맺은 배움의 여정

 다음날 아침 여러곳을 가는 것 보다는 해남의 대흥사 한곳만 들리고 점심을 드시고 강릉으로 가는 것으로 조정했다. 물경 여섯시간 반이나 걸리는 길인데다 일요일이니 아쉬운 여행코스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렇게 남도 절집의 종가 대흥사를 두시간 동안 모시고, 보리밥 정식을 마지막으로 강해영 배움여행을 안전하게 마치었다. 모두가 감사하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