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77) 푸른바다 향해 황금꽃 핀 모감주나무
‘닳아 없어진다’는 뜻 ‘모감(耗減)’에서 유래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린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완도 갈문리와 대문리 해안숲에서는 황금꽃 핀 모감주나무군락이 눈길을 끈다. 올여름도 열돔현상으로 도심지역은 평균 36-37도를 기록하고 밀집지역은 37도를 초과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도 그 나무 아래에 들어서면 공기가 한결 상쾌해진다. 가지마다 달린 황금빛 꽃송이들은 마치 작은 비단 등불을 수없이 매달아 놓은 듯 화사하고, 그 아래 드리운 그늘은 아담한 황금 우산처럼 포근한 쉼터가 되어 준다. 은은한 향기가 열대야와 폭염을 뚫고 바닷바람으로 번져 나와 달아오른 몸과 마음을 감싼다.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에서도 모감주나무 그늘에 잠시 몸을 숨기면, 자연이 건네는 작은 위로가 온몸에 스며드는 듯하다.
모감주나무라는 이름은 ‘닳아 없어진다’는 뜻의 ‘모감(耗減)’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는 불교의 염주와도 관련이 있다. 번뇌를 줄이기 위해 염주 알을 하나하나 굴리듯, 이 나무의 열매 역시 그 마음 수행의 도구가 되었다. 단단하고 검은 씨앗은 염주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그래서 사찰 주변에 자주 심어 ‘염주나무’로도 불렸다. 학명은 ‘Koelreuteria paniculata’로, 독일 식물학자 쾰로이터의 이름과 ‘원추형 꽃차례’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영어로는 ‘Golden rain tree’, 여름철 황금비처럼 쏟아지는 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모감주나무는 단지 아름다움으로 머무는 나무가 아니다. 그늘을 드리우고, 약재와 염료, 목재를 제공하며, 사람들의 삶 곁에 자리했다.
생태적인 특징은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 소교목이다. 바닷가, 강가 및 인근 산지에 높이 3~6m 정도로 자라는 낙엽 활엽 작은 큰키나무이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고 작은 잎은 계란형으로 7~15장이다. 꽃은 6~7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길이 25~35cm로서 가지가 길게 자라 꽃이 모여 달린다. 꽃은 황색이지만 중앙부는 붉은색이다. 꽃잎은 뒤로 젖혀지고 수술은 8개로 긴 털이 있다. 열매는 꽈리 모양이며 10월에 갈색으로 익으며 셋으로 갈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원수, 밀원용으로 심으며, 잎과 꽃을 약용한다. 지금은 환경 적응력이 좋아 도시의 가로수나 공원 조경수로도 많이 식재되고 있으며, 한여름 도심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아름다운 경관수이다. 이 종은 친척 나무가 있는데 무환자나무이다. 모감주나무는 꽃이 가지 끝에 노랗게 피고, 열매는 풍선 모양인데 비해 무환자나무는 황백색으로 피고, 열매는 둥글다는 점이 다르다. 씨앗이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전파하는 것으로 알려져 황해도 및 강원도 이남에 자생하며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한다.
완도 갈문리와 대문리의 모감주나무군락은 남서쪽 해안선을 따라 약 1km에 걸쳐 펼쳐진다. 7월이면 황금빛 꽃이 군락을 이룬다. 2001년 5월 7일,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28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개체들로 구성되어 보전 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다. 안면도와 포항 발산리 군락과 함께 학술적 가치가 높아 대표적인 자생지라고 할 수 있다.
모감주나무가 해안가에 자라는 이유는 씨방의 독특한 구조와 관련이 있다. 열매는 부풀어 오른 주머니 모양으로, 씨앗을 품고 마치 작은 배처럼 떠다닌다. 물에 떨어지면 씨앗은 아래로 향하고 씨방은 위로 뜨며 공기 방울이 생겨 부력을 얻는다. 이 구조 덕분에 열매는 해류를 타고 이동할 수 있으며, 실제로 중국에서 떠내려온 씨앗이 서해안에 도달해 자생한 사례도 있다. 현재 모감주나무가 서해안에서 남해안, 동해안까지 분포하게 된 것도 이 같은 해류 분산 전략 덕분이다. 해류를 통한 이동은 생존과 확산을 위한 자연의 정교한 방식이며, 그 여정은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 그 생존 전략마저 위협받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모감주나무가 주로 자생하는 해안 지역의 식생 훼손이 심화되고 있으며, 해수면 상승과 잦은 해일, 거센 파도와 바람은 해안 침식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모래와 토양은 점점 바다로 쓸려나가고, 모감주나무가 뿌리 내릴 터전은 사라져간다. 오랜 세월 방풍림 역할을 해온 해안숲, 특히 모감주나무군락은 파도의 충격을 흡수하고 토양을 붙잡으며 해안선을 지켜왔다. 해류를 따라 바다를 건너 생명을 전해온 모감주나무는 이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이 나무는 더 이상 자연의 일부로만 둘 수 없는, 우리가 지켜야 할 존재가 되었다. 그 숲은 자연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경계선이자, 살아 있는 완충지대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모감주나무군락을 중심으로 한 해안 식생의 보전은 기후위기 시대 해안 안전망의 핵심이다. 따라서 국제 생물다양성협약이 제시한 '2030년까지 해양보호지역 30% 확보' 목표와 발맞춰, 보다 적극적인 복원과 관리 전략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리아생태연구소 부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