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우리책들]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2024, 월천상회)
지난주에는 인공지능, 인간이 상상하는 완벽하고 순종적인 유사-인간, 즉 인간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꼭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 다수의 발밑을 받쳐주지 않으면 안되는, 지반이 되는 존재들. 먹이사슬 아래 단계에 있는 종족들. 바로 비인간동물과 보통 아닌 인간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불편함 위에서 편하게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칙이 뒤집히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리고 싶은 주제가 된다. 어쨌든 모두들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
이민선 작가의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2024, 월천상회)는 ‘훌륭한 농장’에서 살아가는 ‘훌륭한 돼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잠 잘 자고 밥 잘 먹어서 쑥쑥 크는’ 일이다. 악어, 혹은 구렁이처럼 묘사된 ‘귀에 이름표 다는 기구’가 아무리 무시무시해도 꾹 참아야 한다. 그래야 쑥쑥 잘 크고 있다는 뜻이니까. 점점 클수록 건강 관리도 중요해진다. 작은 바이러스라도 쑥쑥 자라나는 돼지들에게는 위험하니 수많은 약품을 주사받는다.
가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요.
그럴 땐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떠올려요.
이를테면 긴 속눈썹이나 거칠거칠한 털,
또는 핑크빛 발톱 같은 것들이요.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중에서.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림은 목살, 등심, 갈비, 삼겹살, 앞다리살 따위의 식품명으로 돼지를 조각조각 분해한 형태를 묘사하고 있다. 돼지는 작달만한 네모 속에 갇혀있다.
다음 장에는 전염병이 돌아 노란 출입금지 선이 쳐지고 방역 요원들이 손에 살포기를 든 채 뛰어다니는 모습이 묘사된다. 돼지들은 모두 파란 방수포에 들어가 구덩이 속에 들어간다. 돼지는 ‘내 탓이라 생각할 필요 없’다며 ‘사이렌이 멈’춘 뒤 ‘용기 내서 원래의 나를 찾아가’면 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림 속에는 빛 한줄기도 들지 않는다. 어떤 생명들은 탓 없이도 어두운 곳에 갇히고 또 버려지거나 죽는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기다리는 시간이죠.
태어나서
훌륭한 돼지로 자라는 데
필요한 시간,
180일.
그렇게 우리는 훌륭한 돼지가 되었죠.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좋은 게 좋다고, 두려움을 견디고 자라난 돼지들이 훌륭하다는 전제를 의심 없이 믿는 일이다. 180일 동안 무럭무럭 자라난 돼지들은 도살장으로 향하는 과정이 어떠한지와 관계 없이 훌륭하고, 또 굳이 훌륭하지 않은 존재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려는 ‘그렇게’의 무게다. 돼지는, 비인간동물은, 가축을 향한 착취는 착취가 아니라고 믿는 것. 그것은 너무 쉽게 인간성에까지 확장된다.
책 소개를 위해 온라인 공간에서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를 발견하기까지 참 낯설은 과정을 거쳤다. 온라인으로 책을 읽는 일은 디지털 약자들의 접근성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각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확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의 e-book은 그림책 전체 페이지를 이미지로 제공하면서도, tts 인식이 가능한 텍스트를 추가해두었다. 텍스트는 페이지의 그림을 묘사하고, 의미를 전달하며, 그림책이라는 시각적 형태의 예술품을 추상적 의미로서 재해석한다. 그림책을 소개하기 위해 그림의 분위기와 형태를 몇 번이고 묘사해보았지만 그것이 ‘정상 인간’ 아닌 존재들을 위한 일이라는 자각은 없었다. 책은 보통 눈으로 읽으니까.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니까.
확대 해석일 수도 있지만, 이 그림책을 읽은 뒤부터는 ‘모두들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자꾸만 쑤석이고 싶다. 모두들, 많은 사람, 다수, 보통의 존재들이 생각하는 ‘그렇게’에 우리는 얼마나 익숙하며, 그것이 얼마나 많은 ‘이런 이야기들’을 지우는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