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13) 길냥이 수술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병원 가기 전 까망이와 새끼들의 모습.
병원 가기 전 까망이와 새끼들의 모습.

 초봄 면사무소에 들러 길냥이 중성화 수술을 신청했습니다. 세 마리까지 신청 가능한데, 늦을 수도 있다고, 한 마리는 아무래도 빠르지 않겠느냐는 말에 한 마리만 신청했습니다. 담당자가 전담병원에서 어느 때쯤 전화할 거라고.

 생각보다 시간이 한참 지나 5월 말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전에 수술하고 오후에는 퇴원하게 되는데, 수술 부위에 3, 4일 정도 물이 묻으면 안 된다고. 일기 예보를 참고해서 비 안 오는 날로 방문 날을 잡았습니다.

 방문 날짜를 잡고 난 후 누구를 데려갈지 곰돌곰순이 의논했습니다. 이렇게 늦게 전화 올 거였으면 차라리 세 마리 신청할 걸,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르고 고른 끝에 결국 어미인 까망이를 선택했습니다. 새끼 낳은 뒤로 한 달이면 젖을 뗀다고 하니. 그리고 새끼를 더 낳으면 더 이상 감당하기 벅차겠기에.

 곰돌곰순이네 집으로 흰냥이 검냥이가 온 이후 5년여 동안 길냥이들을 관찰하니, 냥이들은 태어나서 늦어도 2년 정도면 독립합니다. 1년 정도 지나면 보통 성묘라고 하는데, 2년 정도면 사람 나이로 스무 살쯤 되니. 아침에 보이지 않아, 어디 마실 나갔다 오겠지 해도 돌아오지 않더니, 한 마리, 한 마리 독립하다 급기야 어느 날, 온 마당을 다 찾아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을 때의 그 긴장되고 두근대던 마음과 텅 빈 허전함이란. ‘빈둥우리 증후군’이란 게 이런 거구나, 경험도 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작년에 태어나 벌써 성묘가 된 아이들이 올해는 단 한 마리도 독립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에 낳은 까망이, 깻잎이, 삼이 새끼들까지 어우러져서, 식사때마다 북적대는 냥이들을 보면,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이 좀 됩니다. 우리가 얘들을 잘 기를 수 있을까. 독립할 때까지만이라도 잘 먹이고, 잘 보살피자는 마음인데, 얘들이 떠나지 않고 계속 여기에 머무르면? 에이, 아직 닥치지 않은 문제이니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일단 중성화 수술부터 시키자.

돌아오는 길에 차를 한쪽에 세워두고 잠깐 쉬면서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한쪽에 세워두고 잠깐 쉬면서 사진을 찍었다.

 케이지에서 탈출한 까망이

 당일 아침, 식사 후, 케이지를 옮겨 문을 열어 놓은 후, 까망이를 간식으로 유인해 케이지에 넣었습니다. 어찌나 울어대던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출발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뒷자리에서 탁, 탁, 소리가 나더니 이내 순식간에 후다닥, 휙~, 획~, 카아~,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어이구야, 까망이가 케이지를 탈출했구나, 하는, 찰나같은 순간, 뒷자리에서 까망이가 운전하고 있던 곰돌이 왼 어깨를 훌~쩍, 타고 넘어 운전대 앞으로 가더니 몇 걸음 오른쪽으로 걷는가 싶다 조수석 창문으로 훌쩍 뛰어, 타닥, 유리창을 몇 번 차더니, 다시 뒷자리로 뛰었습니다.

 조심스레 차를 길가에 멈추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뒷자리에서 트렁크 쪽으로 뛰는 소리가 나고, 다시 앞으로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아, 휘~익, 소리와 함께 다시 운전석 유리창을 타닥, 몇 번 차면서 운전대 앞쪽으로 뛰었습니다. 앞유리창을 몇 번 차더니 이내 구석에 자리 잡고는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까망아~, 불렀더니, 캬아, 거리며 가만히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두 손으로 들어보아도 가만히 있어, 이내 번쩍 들어서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계속 울어대는 까망이를 쓰다듬으며,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 좀 진정되는 거 같으니, 그대로 병원으로 가야 하나, 갈등했습니다. 허벅지에 올려놓은 까망이는 계속해서 처량하게 울어대고, 이 상태로 언제 읍내까지 가나, 하는 생각에 운전대에 손을 올려놓고는 그냥 집에 가자,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까망이는 조용히 앉아서 울기만 했지요. 그래, 언제 다시 날을 잡겠냐, 다행히 까망이가 가만히 앉아 있으니, 내친 걸음이기도 하니 병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2차선으로 시속 50~60km로 달리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느리게 가는데, 신호등이란 신호등은 또 모두 다 걸리는 거 같고, 시간은 왜 그리 느리게 가던지. “하루가 1년 같고, 1년이 10년 같다”더니, 다리는 쥐가 나는 거 같고, 왼손으로 까망이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고, 오른손으로 운전하는데, 왜 그리도 양팔은 뻐근하던지. 갈 때부터 나던 응아 냄새는 점점 심해지고, 까망이는 헛구역질까지 해 대고.

 느리게 간다고, 경적을 울리거나 헤드라이트를 비추던 차들은 계속해서 추월해서 달려가고, 읍내 가는 이 길이 원래 이렇게 멀었나 싶게,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 천천히 가자, 천천히. 까망이는 얼마나 힘들겠어. 이것도 못 할 짓이다, 못 할 짓. 까망이는 원하지 않을 건데, 꼭 해야 하는 건지, 자꾸 되묻는 걸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읍내 동물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운전석에서 혼자 내려 까망이를 잡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창문을 열고 그대로 경적만 울렸습니다. 한참 있으니 현관문이 열리고 얼굴을 익혀 둔 간호사가 나왔습니다. 용무를 말하니, 아, 이런, 원장님이 병가로 휴가 중이라고. 읍내 담당자에게 각 면사무소 담당자들에게 연락을 해 달라고, 공문을 이미 보냈다고. 연락을 못 받았느냐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별수 없어, 그럼 원장님이 6월 중에 돌아오시면 그때 연락을 주고 다시 날을 잡기로 했습니다. 내리지도 못하고, 다시 차를 돌리니, 아, 집까지 또 언제 가나,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또 왜 그리 길던지. 이미 냄새와 한 몸이 되어서 누구 몸에서 나는 냄새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참으로 다행이었던 게, 까망이가 얌전해서 허벅지에서 울면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는 거였지요. 집에 도착해 까망이를 들어보니 허벅지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아, 까망이가 방귀만 뀌었구나, 아, 까망아. 그동안 까망이와 아주 친하게 지냈던 게 까망이의 본능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되어, 곰돌이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나 봅니다. 불행 중 다행.

수술 후 데려오던 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던 조수석 케이지 안의 까망이.
수술 후 데려오던 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던 조수석 케이지 안의 까망이.

 “미래는 우리 뒤에 있지 않으니”

 6월 초 동물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6월 말 다시 까망이를 데리고 읍내 병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케이지의 위쪽 탈출구를 봉인했습니다. 까망이를 유인해 케이지에 넣고, 조수석에 내려놓은 다음,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까망이와 대화했습니다.

 간호사에게 인계해 주면서 저녁에 와야 하지만, 근무 관계로 다음날 오기로 했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참,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늘어나는 길냥이 개체수 조절이라는 큰 틀에는 동의하지만, ‘공존’을 위한 하나의 해법이라는 차원에도 동의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쪽이 아려왔습니다.

 돌아오면 잘 해줘야지, 충격으로 나가 버리려나, 그럴 수도, 다만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랑 계속 같이 살아도 좋고,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잘 해줘야지,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흔적도 없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이곳이 좋아 머무른 시간 동안 곰돌곰순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생각하면, 그 또한 받아들여야지.

 다음 날 오전 까망이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풀어 놓으니 오자마자 새끼들을 부릅니다. 다행히 며칠 지나자 예전처럼 다시 식사 때가 되면 칭얼거리면서 밥 달라 하고, 현관을 나서기만 하면 달려와서 간식 달라고 떼를 씁니다. 다만, 그 정도가 좀 누그러졌습니다. 까망이도 아픈 만큼 성숙해진 걸까요.

 까망이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다만, 죽음의 공포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걸 견디고 돌아왔는데, 나는 그런 경험을 해 보기나 했을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 그 말은 생사의 문제가 가장 크다는 것이니, 그 앞에 다른 어떤 것도 앞설 수 없음이라.

 그럼에도, 그러한 경험 또한 이미 지나갔음이니, “미래는 우리 뒤에 있지 않음이라.”

 과거로의 문은 이미 닫혀 버렸고, 열린 문 미래로 나가야 하느니. 또 다른 상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지금’의 까망이는 이미, ‘어제’의 까망이가 아니겠지요. 까망이에게 배웁니다. 미래는, 결코, 우리 뒤에 있지 않다는 걸.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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