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기후재난 시대, 인간과 자연이 다시 마주하는 자리
폭염으로 지상의 열기를 덥히던 6월 중순부터 땅은 고슬거리다 마침내 거북등처럼 갈라져 갔다. 지리한 장마가 찾아오던 6월과 7월은 어찌된 것인지 올해는 생략되고 말았다. 일상과 같았던 매해의 호우시절은 남부지방에 잠시만 얼굴 비추고, 중부권은 장마전선에 휩쌓인 날들이었다. 그러다 7월 중순에 들어서니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린다.
지난주 토요일 문을 열었던 기찬랜드는 내리는 비에 물놀이 손님이 드문드문 찾아올 뿐이다. 비님은 오시는데, 만족할만한 비는 아니고, 국지성 호우는 폭우로 변해 특정한 지역은 물바다를 만든다. 세상이 복잡해지듯 천문도 이제 비비 꼬여 예측 불가능하다. AI의 시대라고 하지만 세상의 이치를 어찌 통달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늘의 일이라고 맡겨두는 것이 외려 신간편한 일일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6월부터 시작한 뙤약볕은 그렇지 않아도 달궈진 바다를 더욱 뜨겁게 하는지 우리 해양에서는 구경하기 드문 참다랑어가 떼로 잡히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인류세의 재앙 속 인간과 자연의 악순환
지구의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 원인은 인간에 있고 그것이 불을 사용하고, 야생의 땅을 개간하고, 지하광물질을 사용하면서 이미 저질러진 것이라 보는 지질연대적 시선은 현세를 “인류세”의 시기라 칭한다.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조금씩 관여하기 시작하다 이제는 아예 화석연료가 아니면 지탱하기 힘든 생태계를 만들고, 그런만큼 자연은 회복 불능 악순환의 세계로 치달아 예측 불가능한 재해들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일본 열도의 끊임없는 지진은 마침내 큰 지각변동으로 이어져 초대형 지진이 일 것이라는 예언에 모두 조바심을 치는 것이 현실이고, 비가 내렸다하면 홍수로 이어지고, 눈이 내리면 폭설로 인간의 발에 족쇄를 채워 버리고, 불이 발화되면 삽시간에 도달할 수 없는 거리까지 이동하는 이런 아비규환의 세상에 모두들 우두커니처럼 살고 있다.
거기에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동물들의 영역은 갈수록 좁아져 가고 인간의 개발 욕구는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도심으로 들어와 사살되는 멧돼지며 오소리 같은 짐승들의 소식은 매일 뉴스를 장식하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방지하자고 강원도 일원에 설치한 3000km의 철조망 울타리가 지난 겨울 1022마리의 산양을 몰살시켰다는 뉴스까지 더해지는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사이 지난 3월 13일 영암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114일만인 이번 7월 8일부로 해제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코로나가 그랬듯이 이제 인수공통감염병은 고질처럼 끼고 살아가는 것이 고대 인류부터 자연으로부터 의식주를 해결해온 인류가 감내해야 할 숙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즉, 인간은 본원적으로 자연과 합일하며 살아가는 근성을 지닌다는데 이렇게 철벽처럼 자연과 단절하고 인간이란 종족 본위로 사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의구심이 드는 날이다.
울타리 안 문명 속, 문득 찾아온 자연의 소식
그런 어느 아침 카카오톡에 메시지가 떴다. 도포면 수산리 조감저수지에 연꽃이 만개하였다는 소식이다. 그러고 보면 쉼없이 쏟아지는 비와 작렬하는 태양 사이에 가장 많은 꽃이 피는 계절이 지금 아닌가. 20번째 국립공원인 월출산을 바라보는 집과 사무실에서 몇발자국만 움직이면 만날 수 있는 자연인데 나도 어느 사이 울없는 울타리 안에 문명이란 이름안에 스스로 사육당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싶어진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저수지를 찾았다. 4만 5000평에 이르는 호수 공간에 꽃잔치가 벌어졌다.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꽃망울을 금방 터뜨릴 기세로 발화 직전의 등불 같은 모습, 꽃잎을 다 벌려 활짝 피어있는 것, 이제 저물어 가며 붉은 꽃잎이 하얗게 윤색되는 것, 벌써 연밥만 남은 것들이 저마다의 상황으로 호수를 뒤덮고 있었다. 제방이 있지만 풀들이 우거져서 접근하기 쉽지 않고, 농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보았다. 근접하여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데 허락하지 않는다. 길이 없다. 카메라의 렌즈를 한껏 당겨 보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필코 렌즈에 담아내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시인은 왜 셔터를 누르지 않았는가
문득,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는 영화속 장면이 떠 오른다. 숀 오코넬이 히말라야에서 눈표범을 사진에 담기 위해 기다리다 정작 렌즈에 들어왔음에도 지그시 응시하고 셔터를 누르지 않는 장면이 불현듯 다가왔다. 그래 카메라나 핸드폰이 없었을 때 나는 사물을 어떻게 대했었지 라는 질문을 내게 던졌던 것이다. 보고, 느끼고, 만져보고, 내음도 탐색해보고, 어떤 것은 먹어도 보며 대상이 어떤 것인지 다 파악하고 온전히 기억의 저장 장치에 둘려고 했었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대상물이 나타나면 핸드폰 먼저 꺼내서 찍는 것이 먼저고 그런 다음 “어 향기가 나네” 라던가, 잎새의 뒷면에 꺼칠한 돌기가 있네 라든가, 콩깍지 같은 씨앗주머니가 있네 라며 나중에야 그 특징을 파악하는 것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문재 시인은 그래서 “눈을 감지 말고 눈을 끄자”라고 했으리라 싶어진다. 그러고 보니 이 조감저수지에 딱 맞는 시까지 떠오른다. 2007년 노작 홍사용 문학상을 받은 “물의 결가부좌”
‘보름달 이우는 이 신새벽/누가 소리 없이 뗏목을 밀지 않느냐/뗏목에 엎드려 연꽃 사이로 나아가지 않느냐/연못의 중심으로 스며들지 않느냐/수천수만의 연꽃들이 몸 여는 소리 들으려/제 온몸을 넓은 귀로 만드는 사내/거기 없느냐/어둠이 물의 정수리에서 떠나는 소리/달빛이 뒤돌아서는 소리/이슬이 연꽃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이슬이 연잎에서 둥글게 말리는 소리/연잎이 이슬방울을 버리는 소리/연근이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잉어가 부레를 크게 하는 소리/진흙이 뿌리를 받아들이는 소리/조금 더워진 물이 수면 쪽으로 올라가는 소리/뱀장어 꼬리가 연의 뿌리들을 건드리는 소리/연꽃이 제 머리를 동쪽으로 내미는 소리/소금쟁이가 물 위를 걷는 소리/물잠자리가 제 날개가 있는지 알아보려 한 번 날개를 접어보는 소리/소리/모든 소리들은 자욱한 비린 물 냄새 속으로/신새벽 희박한 빛 속으로/신새벽 바닥까지 내려간 기온 속으로/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으로 제 길을 내고 있으리니/사방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리니/어서 연못으로 나가 보아라’
눈을 끄고 나니 이제야 소리가 들리는 것을 시인은 알아 버렸다. 그런데 소리를 인지하게 되니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세심하게 보여진 것이다. 지난해 영암에 오셨을 때 이문재 시인에게 이 시를 짓는데 얼마나 걸리셨냐고 여쭸었다. 두서너 시간에 완성했다는 답을 들었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마침내 내가 얻은 결론은 시인은 어떤 감성이나 화두를 키핑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레고 게임처럼 언어를 여기저기 배열해서 뚝딱 완성해내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었다. 터져 나오는 말씀의 사원, 그걸 혼자 감춰두느라 낑낑대면서 말이다.
연꽃의 소리, 연잎의 숨결, 미꾸라지의 무심한 동작
햇살이 더욱 강렬해지는 조감저수지를 나는 다시 배회했다. 어딘가에 저 펄럭이는 연꽃들 사이로 들어가는 길이 있을 듯 해서다. 그러면 거기 애련설을 노래했던 주돈이와 조우하거나, 부활하는 심청이라도 만나거나, 도갑사 도선국사비의 거북이를 받쳐주는 연잎(앙련) 같은 장대한 잎이 있을 것 같고, 무장읍성의 객사 장대석에 새긴 연봉우리 형상이 있을 것 같아서다.
진흙 사이로 무심하게 미꾸라지 한 마리가 구멍을 파고 들어간다. 소금쟁이는 물 밖에서 물을 가지고 놀고 있다. 아직 이슬을 버리지 않았던 연잎이 물을 돌돌말아 아래로 내린다. 벌들은 꽃이 지천이라 어디에 앉아야 할지 좌표를 정하지 못한 듯 웅웅 거린다. 여기가 그들의 낙원일 터이다. 1945년에 만들어졌다는 이 저수지에서 만개한 연꽃과 더불어 범접하지 못할 새로운 세상을 꿈꿔본다. 너무나 신성한 곳은 다 가시덤불이거나, 늪지여서 인간이 함부로 들어서지 못함으로서 자신들만의 낙원을 구가하는 방식의 자기방어 기제를 가졌었다. 그런데 중장비 기술의 발전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느릿하던 이 세계를 짓이기고 들어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끈덕지게 살아남아 이렇듯 맑고 향기로운 그들만의 내음을 온 세상에 선물하는 것이다. 연꽃의 진정한 내음을 얻으려면 해뜨기 전에 오무리고 있는 연이 ‘퍽’하고 터지는 그 순간에 찾아야 함을 알고 있다. 게으른 나는 그날 한낮에도 향기에 취하며 달 밝은 밤이나 신새벽에 나가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강풍 속 연꽃의 진동, 그리고 연방죽의 숙연함
그런데 목요일 오늘 나에게 연꽃의 사진을 보내주신 선생님과 또 조감저수지를 찾았다. 모질게 비가 내리고, 바람이라기 보다는 강풍이라 해야할 거센 바람속에서 풀잎처럼 하늘 거리는 연꽃을 다시 만났다.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연방죽에서 나는 잠시 숙연함을 느꼈다. 그리고 기왕 영암의 연꽃을 공개했으니 고대의 해상항로였던 상대포 호수 공원의 연꽃도 카메라에 담아 공개한다. 연꽃 같은 향기를 품고 있는 영암에서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도모해 보시면 좋겠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