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얘기부터 해보자. 이번 폭우 직전, 폭염이 지속하다 선선한 날씨를 잠시 보인 적이 있는 이른 아침, 남악신도시행 버스를 타기 위해 먼저 광주 시내버스에 올랐다.
아뿔싸,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은 시내버스 내부는 후텁지근했다. 하지만 좌석을 메운 승객들은 애먼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며 버틸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참다못한 일부 승객만 버스 창문을 열어젖혔다.
맨 뒤편에 앉은 기자는 고민했다. “버스 기사님, 더운데 에어컨을 좀 틀어주시면 어떨까요”라고 말을 할까 말까 했다. 뒤쪽이어서 아무래도 큰소리를 쳐야 할 것 같아 망설이다 접기로 했다. 그러던 중 목적지 정류장에 도착해 하차했다. 아마 더 멀리 가는 승객들은 그대로 삐질삐질 땀을 흘리거나 선풍기 대신 손바람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버스 기사가 직접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한 말이다.
이런 경험이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는데, 그때에는 ‘용기를 내’ 버스 기사한테 에어컨을 켜달라고 했고, 여러 승객을 시원하게 해주며 뿌듯해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왜 버스 승객들은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고 인내하는 걸까. 이런 현상은, 특히 이 지역민만의 특징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참고 버티고 가는 것에 익숙한, 견디기 힘들면 아예 떠나면 되지, 아니면 최소한 내 자식만이라도 좋은 곳(서울)에 보내고, 실제 그렇게 성공하면 됐다고 하며 자족하는 데 젖어 있는 건 아닐까.
버스 기사(이재명 대통령)가 이제 더우면 말하라고 한다. 단순히 에어컨만 틀어달라(당위성)고 하지 말고, 에어컨 온도와 바람 방향 등(실용적 디테일)을 좀 상세히 알려달라고 한다.
에어컨을 안 틀고 있으면 버스 기사에게 의당 틀어달라고 요구해야 할진대, 버스 기사가 말해 달라고 하니, 단순 전달만이 아니라 큰소리를 내 이것저것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에 나온 박찬대 의원이 최근 호남을 방문해 이 대통령이 호남을 아주 획기적으로, 근본적으로 바꿀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정청래 의원은 호남발전위원회를 만들어 미래 지역 발전안을 내놓으면 강력히 밀겠다고도 했다.
언제 이럴 때가 있었는가. 이것이야말로 멍석을 깔아주는 게 아니고 뭘까.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큰소리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던져야 할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옮겨가니 호남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해달라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간 말 못 하고 아껴둔 발전 청사진을 들이미는 것이다. 인내하며 버텨온 시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고 해도 좋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해수부 일부 기능을 떼네 전남으로 보내달라고 하는 정도로 양이 찰 수 없는 일이다.
한데 안타깝게 기후에너지부의 나주 유치 선언이 용두사미 모양새다. 기후에너지부가 아직 어떻게 신설될지 모르고, 또 정부의 여타 부처 연관성을 고려해 전남보다는 세종으로 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게 저간의 사정이다.
꼭 기후에너지부가 아닐지라도 대담한 발상과 비전으로 새 정부와 씨름해야 한다. 김영록 전남지사의 목포·무안·영암·해남을 묶은 ‘서남권 50만 인구 혁신성장벨트 구축’ 프로젝트는 그래서 참신하다.
이외에도 RE100 국가산단 조성을 앞두고 전남 지정을 공식화해달라고 설득과 요청을 하고 있고, 광양·순천 등 동부권에도 국가산단 입지 필요성을 주지시키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빅이벤트인 오는 2028년 제3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3) 여수 유치도 반드시 챙겨야 할 현안이다.
뿐인가. 세계 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과 같은 행사를 호남이라고 못하란 법이 있는가. 무슨 말이냐 하면 정치도시 광주, 호남을 국내뿐 아니라 국제 정치도시로 대전환하는 광주포럼 또는 호남포럼을 이재명 정부 하에서 띄워보자는 것이다.
물이 들어올 때 배를 띄워야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그것도 용기백배해 나아가야 한다. 안 될 것이라고 미리 단정짓는 습관은 바닷물에 던져버리자.
문제는 이런 걸 만들고 요구하는 주체가 지자체장과 행정 관계당국 등 소수에 그친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와 지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 지역 발전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펼쳐보이는 것도 필요하리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소극적 역할에서 벗어나 보자는 거다. 지역 언론도 행정기관 정책 홍보 또는 그것의 아류 수준에서 떨치고 일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자체장이나 책임 있는 분들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자꾸 시민들에게 물어야 한다. 해달라고 하는 것을 직접 나서 하거나 정부에 호소해야 한다. 시민 스스로도 알아서 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전근대적, 퇴행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호남인이여, 제발 이재명 정부를 향해 큰소리치자. 속칭 ‘빌런’도 있어야 한다. 분명히 시원하고, 쾌적한 버스(도시) 내부를 만들어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정진탄 전남본부장 겸 선임기자 chchta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