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78) 바람과 물을 품고 사는 버드나무
연약하고 부드러운 가지 ‘부들나무’
기후위기가 더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찜통더위와 물폭탄이 일상이 된 여름, 지난 17일 광주는 하루 만에 426mm의 기록적인 폭우를 맞았다. 사흘 동안 이어진 물폭탄에 영산강과 황룡강, 광주천 물길은 순식간에 불어나 둔치 산책로가 물에 잠기고, 다리 위로 넘실대는 물살은 위태로워 보였다. 장마가 지난 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황룡강 장록국가습지를 찾았다. 익숙하던 풍경은 처참하게 변해 있었다. 황룡강변을 푸르게 채우던 버드나무 숲은 일부가 힘없이 쓰러졌고, 어떤 나무는 뿌리째 뽑혀 강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늘 아래 살던 새와 작은 동물들도 터전을 잃고 흩어졌다. 건강하게 서 있던 나무가 쓰러져 드러난 맨땅과 흙탕물에 패인 깊은 흔적은 폭우가 남긴 상처처럼 선명했다. 그 풍경 앞에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사람에게도, 동식물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 괴물 폭우의 현장은 기후위기가 우리 곁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과 물폭탄이 더 이상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후 재난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한층 더 조급해졌다.
버드나무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가지를 가리켜 ‘부들부들하다’고 표현한 데서 ‘부들나무’라는 옛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점차 ‘버들’ 또는 ‘버들나무’로 불리다가 오늘날의 ‘버드나무’로 굳어졌다는 설이 있다. 가지가 휘늘어지는 모양과 부드러운 성질 덕분에, 버드나무는 옛 이별의 노래에도, 설화 속 왕비의 버들잎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했다. 학명은 Salix koreensis로, ‘sal’(물) + ‘lic’(근처에 자라는)에서 온 Salix(버드나무 속)와 ‘koreensis’(한국의, 한국산)가 합쳐진 이름이다. 즉 “물가 근처에서 잘 자라는 한국 고유의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물과 가까이 자라며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해 온 버드나무는 예로부터 생활용품, 약재, 설화와 민속 속 상징물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며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로 자리해 왔다.
버드나무의 생태적 특징은 물가에 자라는 낙엽활엽 큰키나무로 줄기는 높이 20m에 이른다. 어린 가지에 털이 난다. 잎은 좁은 피침형 또는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안으로 휘는 작은 톱니가 있다. 잎 앞면은 녹색이고 털이 없으며, 뒷면은 흰빛이 돌고 맥 위에 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진다. 꽃은 암수한그루로 4월에 잎이 나면서 동시에 꽃이 핀다. 수꽃차례는 장타원형이며 암꽃차례는 원추형이며 황록색이다. 암술에 털이 난다. 물을 좋아해 축축한 땅에서 특히 잘 자라며, 계곡·하천가·저수지 등 습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수양버들, 왕버들, 갯버들 등 약 30종의 버드나무속 나무들이 자생하며, 한국·일본·러시아 동북부에 분포한다.
최근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광주의 폭염일수는 3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집중호우 일수 또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도시를 덮치는 극단적인 여름 속에서도 장록국가습지는 여전히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 비밀은 황룡강 모래톱을 따라 우거진 버드나무 숲에 있다. 장록국가습지의 버드나무 군락은 한여름 비가 쏟아질 때마다 거대한 초록의 방파제가 된다. 무성한 잎과 유연한 가지가 빗물을 부드럽게 받아내어 지표면으로 흘러드는 유입을 늦추고, 수천 가닥으로 얽힌 잔뿌리가 물을 흡수하며 토양을 단단히 붙잡는다. 덕분에 갑작스러운 폭우에도 토양 침식이 크게 줄어들고, 유속이 완만해져 하천이 급격히 범람하는 일이 적다. 실제로 장록국가습지는 2020년대 여러 차례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도 큰 홍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버드나무 숲이 빗물을 붙잡아 서서히 하류로 흘려보내는 천연 제방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사실 버드나무는 물가에서 자라는 데 최적화된 나무이다. 땅이 촉촉할수록 뿌리가 깊고 넓게 뻗어나가 빗물을 저장하고, 물이 넘칠 때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었다가 서서히 배출한다. 또한 유연한 줄기와 가지가 하천의 흐름을 완충해 물의 세기를 분산시키므로, 콘크리트 제방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유속을 조절할 수 있다. 실제로 헝가리 티사(Tisza) 강 하구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버드나무 군락의 수관 밀도(NRD)가 높을수록 범람 시 유속이 현저히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나무가 빽빽할수록 물의 흐름이 차단되고 속도가 느려지며, 이로 인해 퇴적 작용이 촉진되어 토양 침식이 줄어든다. 영국 등 유럽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강변에 버드나무 생목을 엮는 ‘웰링 스파일링(spiling)’ 공법을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다. 이 공법은 홍수 시 제방 침식 방지와 안정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버드나무 숲은 하천의 자연 제방이자 거대한 초록 스펀지로 기능한다. 인간이 만든 둔치나 콘크리트 제방보다도 홍수 피해를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생태 기반 해법이라는 점에서, 하천 관리나 도시 기후 적응 전략을 수립할 때 수목 제거 대신 버드나무 군락 보존과 활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폭우가 그치자 다시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폭염의 일상이 찾아왔다. 이럴 때 버드나무는 또 다른 역할을 한다. 잎사귀에서 이뤄지는 증산 작용으로 주변 공기를 식히고 습도를 조절하며, 폭염에 지친 도심 주민들에게 자연의 녹색 에어콘이 되어 주는 것이다. 물을 가두고, 물을 식히고, 다시 공기를 적시는 이 순환은 자연이 가진 최고의 물 관리 시스템이자, 기후위기를 완충하는 살아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장록국가습지를 거닐다 보면, 폭우와 폭염 속에서도 묵묵히 하천을 지키는 버드나무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무심한 듯 늘어진 연둣빛 가지 아래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면, 물 위로 드리운 그늘과 서늘한 바람이 도심의 뜨거운 열기를 잊게 한다. 인간이 만든 인공 제방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해내는 나무, 버드나무.
앞으로의 도시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이러한 자연의 힘을 지켜야 한다. 하천 식생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연구, 그리고 버드나무 숲과 습지 같은 보호지역의 확대가 그 첫걸음일 것이다.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리아생태연구소 부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