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 장성 축령산 산신령 변동해 씨
빈 집·외양간 2개월간 고쳐 문화공간으로 개조
“문화가 미래의 굴뚝입니다. 농촌을 살리는 건 어떤 시설이 아니라 자연 경관 속에서 작품 활동도 할 수 있고 감상도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입니다. 사람 하나 다니지 않던 마을에 이런 공간 하나가 생기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갈 수 있으니 좋지 않나요?”
30일 전남 장성군 북이면 사가묘동길 28. 몇 가구 살지 않는 소박한 시골 마을이 떠들썩해졌다. ‘축령산 산신령’이라 불리는 청담(靑潭) 변동해(72) 씨가 마을에 텅 빈 폐가와 외양간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면서였다. 전국 곳곳의 지인들과 문화예술인이 마을을 찾아와 홍어와 막걸리를 즐기며 축하잔치를 펼쳤다.
변 씨는 장성 축령산 자락에 살고 있는 ‘산신령’이라 불린다. 장성군청에서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하다 명예퇴직한 그는 1999년 금곡 영화마을을 감싸고 있는 축령산에 버려진 움막을 고쳐 세심원(洗心園)을 열었다. ‘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여러 개의 열쇠를 만들어 마음 수행이 필요한 이들에게 공간을 무료로 개방했고,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찾으면서 ‘세심원지기’로 널리 알려졌다.
“집이 10여 채” 빈공간 새롭게 재단장
그 이후에도 생기를 잃어가던 농촌의 옛 공간들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집이 10여 채는 된다”는 그의 말처럼 빈 집처럼 보이던 마을 곳곳의 집들이 모두 새롭게 탄생한 곳들이었다. 이번에 문을 연 곳도 버려져 있던 외양간을 갤러리 겸 작업공간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그가 매일 같이 남기는 인터넷 카페 글을 통해 그 시작을 엿볼 수 있다. “외양간, 처음 보는 순간 번개처럼 스쳐갑니다. 바로 이것이다. 소멸 위기 농촌 살리기, 개조하면 너무 이쁠 것 같아 ‘외양간 스페이스’라 명명. 인문 사랑방, 작품 전시, 문화 창작 공방 등 활용하고자 두 달간 정비.”
‘외양간 스페이스’의 개막 잔치가 열린 이날은 1974년 7월 30일 그가 처음 공무원으로 발령 받은 날이었다. 세심원 앞에 세운 빗자루 조형물인 ‘세심비’ 제막식을 2017년 3월 3일 오후 3시 33분에 가진 바 있기에 이유가 있느냐 물었더니 그는 “작은 행사 시간 하나에도 의미가 있으면 더 좋지 않겠냐”고 웃으며 답했다.
비어 있던 외양간을 고치기 시작한 건 5월 무렵. 푹푹 찌는 듯한 더위에도 쉼 없이 공간을 꾸며온 그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렇게 약 80여 일의 시간 끝에 ‘외양간 스페이스’가 탄생했다. 외부에는 소들이 살던 곳이라는 걸 알리듯 소 머리 조형물이 설치됐고 그 옆엔 그가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은 빗자루 한 대가 걸렸다.
소가 살던 흔적도 살리고
내부 공간은 소를 키우던 곳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향긋한 편백나무 향이 퍼지고 깔끔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갤러리에는 그가 처음 그린 그림이라는 두 점의 작품이 걸렸다.
검은 벽엔 하얀 배경의 검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맞은 편 하얀 벽엔 검은 배경의 하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마주보고 있다. 각각 검은 소와 흰 소를 나타냈다는 그림은 그의 철학에서 마음을 맑게 한다는 ‘세심비’로 그린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이야 많지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림은 많지 않아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림은 혼이 담겼습니다. 저는 이번에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 지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내 속에 혼이 홀린 듯 붓을 움직였죠. 그 혼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저 그림이 보일 거예요.”
외양간 스페이스 내부 곳곳엔 소가 살던 흔적이 남아 있다. 소가 빼꼼 머리를 내밀어 바깥을 바라봤을 창을 양 쪽 벽 아래 그대로 뒀고, 힘이 센 소가 뒷발을 차 파였을 구멍도 그림 아래 하나된 듯 자리하고 있다.
그는 “옛 집을 고칠 때 최대한 변형시키지 않으려고 해요.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 없는데 아름답게 살아야 아름다움을 알 수 있죠. 내가 아름답게 볼 줄 모르면 전부 쓰레기가 되겠지만 알아본다면 모두 쓸모있게 되겠죠.”라고 말했다.
“소박한 집은 사람을 숙성시켜요”
그는 이 공간이 ‘사람 숙성실’이라고도 표현했다. 공간에 들어오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세를 낮출 수 있게 된다는 것.
“소박한 집은 사람을 숙성시켜요. 이런 예술품 하나라도 집에 걸려 있으면 공간에 자연스럽게 그 정신이 배어들죠. 그런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은 건성거릴 수가 없어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언어가 순화되죠.”
그는 20여 년 전 놀고 있던 마을회관을 숲속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때부터 마을의 빈 집을 고치는 데는 도가 텄다고 말했다. 이번 외양간 스페이스가 그러하듯 현재도 마을 곳곳의 버려진 공간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도록 숨을 불어넣고 있다.
“숲속미술관을 만들 당시에 시 단위에도 미술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장성 산자락에 미술관을 여니 얼마나 놀라웠겠어요. 시골 마을을 한가득 채울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왔고 호응이 엄청 났죠. 단순하면서 시골스러운 문화가 최고 아름다운 문화예요. 그렇게 조용하던 동네를 찾아오고 싶은 동네로 바꿔가는게 내 꿈입니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