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교 교수의 복지상식]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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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은 각종 복지지원금을 대상자가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며 대상자에게 자동으로 지급하도록 원칙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가 아니냐?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13일 대통령실이 주최한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가 아니냐”며 “신청을 안 했다고 (지원금을) 안 주니까, 지원을 못 받아서 (사람이) 죽고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지 못해 가난으로 세상을 등진 이들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송파 세 모녀’는 복지급여를 신청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신청하려고 상담했지만 성인 자녀가 있어서 수급자로 책정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수급자 선정요건에 해당되면 정부가 “대상자에게 자동으로 지급하도록 원칙을 변경해도” ‘송파 세 모녀’는 생계급여 수급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도 이들은 긴급복지를 받거나,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조건부 수급자’로 선정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수급자 선정기준이 매우 불합리한 것이 아니냐?”를 먼저 물었어야 했다. 신청주의를 ‘당연 지급’ 혹은 ‘자동 지급’으로 바꾸어도 수급자 선정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정부 지출이 늘어날까 봐 그런 것이냐?

 이 대통령은 보건복지부에 “신청주의로 하지 말고 자동 지급하는 제도로 바꾸면 정부 지출이 늘어날까 봐 그런 것이냐, 수혜를 거부하는데 왜 강제로 주냐고 그럴까 봐 그런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임호근 정책기획관은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보장 급여는 신청주의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담당 기관이 직권으로도 보호할 수 있다. 다만 직권으로 보호할 때도 대상자에 대한 동의 절차가 법상 필요하고, 그 동의 절차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답변했다.

 45년간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필자의 눈으로 보면 정부가 복지급여를 신청주의로 시행하는 것은 “정부 지출이 늘어날까 봐 그런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민에게 주는 대표적인 복지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이 제도는 수급자를 크게 4가지로 분류한다. 즉, 가구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32% 이하이면 생계급여 수급자, 32%를 초과하고 40% 이하이면 의료급여 수급자, 40%를 초과하고 48% 이하이면 주거급여 수급자, 50% 이하는 교육급여 수급자로 선정한다. 대체로 생계급여 수급자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를 받고, 의료급여 수급자는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지만 의료급여와 주거급여, 교육급여를 받는다. 주거급여 수급자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지만 주거급여와 교육급여를 받고, 교육급여 수급자는 교육급여만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생계급여 수급자가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가구 소득인정액(부양의무자의 부양비 포함)이 기준 중위소득의 32% 이하인 사람이 받는 생계급여 수급자가 중위소득의 40% 이하인 사람이 받는 의료급여를 받지 못한 것은 ‘부양의무자의 부양비 산정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생계급여를 받지 못해 죽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생계급여 수급자의 부양의무자는 크게 완화되었지만, 의료급여 수급자의 부양의무자 선정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은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되어도 먼저 부양의무자에게 도움을 받고, 다음 대책으로 의료급여를 고려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부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신청주의는 복지예산이 늘어날까 봐” 그런 것이다. 복지예산을 현행보다 늘리지 않은 상태에서 ‘신청주의’를 ‘자동으로 지급하는 원칙’으로 바꾸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 복지급여를 자동으로 지급할 때 추가로 소요될 예산을 확보하면서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신청을 받는 것과 자동 지급은 철학이 다르다

 이 대통령은 “신청을 굳이 받는 것과 행정기관이 자동 지급하는 것은 기본 이념이 다르다. 자동 지급이면 (정부가) 확인·조사할 책임이 생기지 않느냐”며 “필요하면 입법으로 처리하면 되니까 (자동 지급 방식으로 변경하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이 대통령의 복지철학에 공감한다. 현재 국민이 신청하면 받을 수 있는 복지급여가 360가지가 넘는다. 이는 중앙정부가 설계하여 전국에서 시행되는 것이고, 특정 시·도 혹은 시·군·구가 해당 주민에게만 주는 것을 포함하면 1만 가지가 넘는다. 그런데, 거의 모든 복지급여는 당사자나 가족이 신청할 때 받을 수 있다. 많은 국민은 복지급여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상황에 어떻게 신청하면 되는지를 잘 모른다. 당사자가 신청할 때 정부는 ‘자격이나 조건을 확인한 후’ 예산의 범위내에서 주는데, 국민은 제대로 알지 못하니 신청조차 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복지급여를 신청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면 그 책임은 ‘해당 국민’에게 있다. 현실은 알아야 신청할 수 있고, 신청절차가 복잡하여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 행정적으로는 ‘신청하지 않는 것’이 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상담은 했지만, 신청하지 않아서 지원하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신청주의냐 보편주의냐는 효율성의 문제이기에 앞서 헌법상 규정된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느냐에 대한 복지철학이다.

 ▲이렇게 하면, 자동으로 지급할 수 있다

 대통령이 복지급여를 자동으로 지급하도록 변경을 지시해도 예산이 부족하고 법령을 바꾸지 않는 한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 예산이 확보된 사업부터 일단 시행하고 이를 전향적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모든 아동이 태어나 출생신고할 때부터 받을 수 있는 부모급여, 아동수당, 가정양육수당(혹은 표준보육료 지원)을 ‘당연지급’으로 바꾸어 보자. 현재도 아동이 태어나면 그 병원에서 출생신고를 하고, 부모급여 등을 신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만약, 출생신고를 한 부모(혹은 보호자)가 부모급여 등을 받지 않으면 담당공무원이 확인하여 자동 지급하면 될 것이다.

 둘째, 소득 하위 노인 70%가 받는 기초연금을 자동 지급으로 바꾸자. 65세가 되기 직전에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해당 국민의 ‘가구 소득인정액’으로 ‘기초연금 수급자’를 판정하여 당사자에게 지급받을 통장을 확인하도록 통보한다. 정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을 위해 국민의 통장계좌를 알고 있기에 이 통장으로 지급하면 된다. 당사자에게 휴대폰 문자로 통보하고 ‘이의신청’이 없으면 입금한다. 사회보장정보원은 65세 이상 중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자의 소득인정액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여 발굴된 새 수급자를 발굴한다.

 셋째, 전체 국민중에서 수급자 수가 많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복지급여부터 자동 지급으로 바꾼다. 이후 저소득 등록장애인에게 주는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장애아동수당 등을 자동지급으로 바꾸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사회서비스의 수급자 선정기준을 현실화·표준화하고 대상자임을 통보한 후 신청 혹은 자동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될 것이다. ‘국민주권정부’가 모든 국민이 헌법상 규정된 행복추구권을 일상으로 누리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 https://www.ssis.or.kr

이용교<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ewelfa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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