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

흰뺨검둥오리 새끼들.
흰뺨검둥오리 새끼들.

 이 오리는 우선 이름부터 참 이채롭다. 갈색 몸에 비해 얼굴이 조금 환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 걸로 추정하지만, 얼굴이 그리 희진 않다. 뺨이 정말로 하얀 오리는 ‘흰뺨오리’이다.

 오늘 주인공으로 하필 동물 중 비교적 평범한 오리를 고른 것은 이 오리가 결코 그렇게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초여름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십여 마리의 오리 떼를 발견한다. 얼추 어미 한 마리에 새끼 10마리 정도가 나란히 줄지어 간다. 흡사 유치원 나들이 풍경 같다. 행동도 참 일사불란하고 어미는 이미 갈 곳을 아는 듯 앞만 보고 부지런히 앞서가고 새끼들은 이 어미의 움직임을 전적으로 따라 한다. 그러다 위험한 차도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들어선다. 어미도 사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어쩌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어미가 되었고 어쩌다 쫄병에서 졸지에 리더가 된 것이다. 작년 만해도 자기도 저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던 새끼 오리였다. ‘그런데 이게 뭐람! 어디로 가야 한담!’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고 새끼들은 맹목적으로 나만 바라본다. 일단 무작정 물 냄새 나는 방향으로 물가를 찾아 헤매다 보니 이렇게 도로 한가운데까지 딱 들어서게 된 것이다. 차는 쌩쌩 달리고 이 오리들의 목숨은 경각인 위태로운 상황, 갑자기 누군가 자기 차를 세우고 양쪽에 차를 못 가게 막은 후 오리들이 무사히 도로를 건너게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드물지만 가끔 적도 위편 세계 도시 곳곳에서 이맘때쯤 벌어지는 풍경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들을 보통 ‘청둥오리’라고 쉽게 부른다. 겨울에 오는 오리 종류는 수십 종인데 대개 퉁쳐서 편하게 부르는 게 바로 청둥오리이다. 워낙 녀석들 숫자가 많고 수컷 머리 모양이 푸른색으로 도드라져 있고 또 크기도 커서 일반인들이라면 야생 오리를 그냥 그렇게 불러도 80%는 맞는 셈이다. 텃새로 드물게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무리와 같이 몽골이나 시베리아로 날아가 시원한 여름 번식 철을 보내고 그곳에 혹독한 추위가 찾아오기 전에 미리 남하하여 비교적 따듯한 우리나라나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그들은 고향은 한반도 위쪽의 북녘이고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이 늘 작동한다.

 그런데 이들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우리나라가 고향인 유일한 오리가 있으니, 바로 오늘의 주인공 ‘흰뺨검둥오리’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서 나고 자라고 소멸한다. 모두가 떠난 봄여름의 강이나 하천에서 홀로 둥둥거리며 유유자적 떠다니는 정겨운 우리의 이웃과 같은 우리나라 대표 야생 오리이다. 우리나라의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보내는 오리는 이들뿐이다. 아파트 옥상이나 공장 공터에서 어미가 갑자기 사라져 덜컥 남겨진 이들 새끼 오리들을 구해다 키우시는 분들도 동물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일반 닭 사료나 견과류 채소 같은 주로 식물성 먹이를 그릇에 놓아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찾아 먹고, 두 달 정도 키우면 금방 폭풍 성장하여 어미 없이도 형제끼리 자연에 다시 되돌려보낼 수 있는 비교적 사육 난이도가 낮은 오리들이다. 먹이를 주는 사람을 어미로 인식하여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여 키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녀석들은 암수 차이가 거의 나지 않고 온몸이 거의 갈색으로 밋밋하지만, 날개를 펼치면 날개 한가운데 파란 깃이 돋보이기도 한다. 은근한 멋을 아는 녀석들이다. 그리고 검은 부리 끝에 노란 입술 같은 무늬가 있어 이들을 다른 오리와 구별하는 팁으로 삼기도 한다. 여름 하천가에도 겨울 못지않게 많은 새들이 오간다. 민물가마우지, 중백로, 쇠백로, 황로, 왜가리, 해오라기, 할미새, 물떼새 등등이다. 그러나 늘 뭔가 분주한 그들 사이에서 흰뺨은 홀로 한가로이 둥둥 떠다닌다. 그들은 우리 앞에 고스란히 자기의 생로병사를 펼쳐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어쩌면 늘 곁에 있어 평범한 것들이 실은 가장 소중한 것들인지도 모른다.

 최종욱 <수의사>

▲흰뺨검둥오리 (Eastern spot-billed duck)

 - 학명 : Anas zonorhyncha

 - 분류 : 척삭동물 > 조강 > 기러기목 > 오리과 > 오리속 > 흰뺨검둥오리

 - 크기 : 몸길이 : 55~63cm, 800g~1.3kg의 중형오리

 - 식성 : 식물의 종자, 낟알, 풀줄기, 수서곤충 등

 - 수명 : 평균 2~10년

 - 서식지 : 텃새 또는 겨울 철새, 중국, 일본, 몽골, 시베리아의 강, 하구, 저수지, 호수, 해안

 에서 단독 또는 2마리 생활

 - 번식 : 6∼7월에 물가의 풀밭 둥지에 10~12개의 산란, 26일 후 부화, 둥지를 떠나 어미와 생활

 - 천적 : 수달, 뱀, 족제비, 쥐, 부엉이, 매, 고양이, 삵 등

 - 멸종위기등급 : 최소관심(LC : Least Concern, 출처 : IUCN)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