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적, 행정적 방법만 쓰지 말고 문화인류학적 접근도 고민해야 합니다.”
지난 6월 중순 이재명 대통령 주재 광주 타운홀미팅이 있기 전, 지역 행정기관 간부 공무원과 군공항 해법을 논의하던 중 기자가 내놓은 제안이다. 당시 이 말을 들은 간부 공무원은 엷은 미소만 띤 채 침묵을 지켰다.
타운홀미팅 이후 속도감 있게 진행될 줄 알았던 군공항 이전 문제가 주춤하는 모양새인데, 9월이면 대통령실 6자(광주시·전남도·무안군·국방부·국토부·기재부) TF가 가동될 것이란 전망이다.(최근 김영록 전남지사는 본보 인터뷰에서 이를 확인한 바 있다.)
TF가 공식적으로 뜨면 군공항 이전 반대 무안군 주민들 마음도 흔들리지는 미지수다. 워낙 반대 정서가 심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마음을 얻을 비책이 정치경제적, 행정적 마인드에서 나올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군공항 이전을 반대하는 무안 현지인이 충분한 보상, 소음 대응 과학적 분석, 미래 지역발전 비전 등을 바라고 그러는 것이냐는 문제다. 더 간단히 말해 다른 것은 몰라도 군공항 이전만은 절대 안 된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수년 전 무안 한 마을로 이사한 지인은 아침·저녁으로 평야처럼 펼쳐진 밭 언덕을 바라보는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광주에서 옮긴 그는 “이제야 내 삶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무안 해안으로 가는 도로를 이용하다 보면 좌우로 펼쳐진 황토밭 풍경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고무호스를 이용해 여기저기 농작물에 물을 뿌리는 장면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런 곳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투기가 하늘을 가로지른다면, 또는 소음 피해가 없더라도 군공항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면 반길 수 있을까 감정이입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무안은 백제시대에 물아혜(勿阿兮)라고 불렸다 한다. 물 아래, 물 안에 있는 지역이란 뜻으로 유구한 역사적 흐름을 따라 현재의 무안이란 이름에 도달했다. 무안을 한자로 하면 ‘務安’인데 ‘편안함에 힘쓴다’ 또는 ‘일함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지리상 바다로 둘러싸여 전남 서부권인 영광, 함평 등과 함께 기(氣)가 센 곳이란 평을 받는다.
그런 전통이 이어져서인지 현지인들은 독자적 삶을 추구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주지하는 것처럼 무안반도(목포·무안·신안) 통합이 30년 동안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안 반대로 무산됐다. 무안은 스스로 발전할 역량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며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고집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무안의 자존심에 금이 간 사건이 2018년 광주시로부터 약속받은 민간공항 이전이 2년 만에 수포가 된 일이다. 당시 광주시민의 반대가 심해 넘길 수 없게 됐다고 하나 무안군민은 그런 말이 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진심 어린 공식 사과도 없어 허탈해했음은 물론이다.
기자는 무안 현지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강기정 광주시장의 무안 잠행을 권했다. 전통시장 등을 예고 없이 찾아 농산물도 사고 상인들과 정겹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하기를 바랐다. 되도록 현지인을 자극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후 공개적으로 광주시 공무원들이 전남도 공무원들과 함께 전통시장을 돌며 군공항 이전 관련 정보를 알리고 홍보했지만 역효과를 냈다. 강 사장의 손편지 전달, 공무원들의 양파 농가 일손돕기도 이어졌으나 현지인과 충돌 직전까지 갔다.
마음을 얻는 또 다른 방법으로 쌀값 하락에 낙망하는 무안지역 ‘황토랑쌀’을 광주에서 대량 구매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규모 현금성 지원이 더 낫지, 이런 자질구레한 방법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으나 알 수 없는 일이다. 쌀 한 톨로 높은 경계심의 농심이 허물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기 때문이다. 6자 TF에서 내놓는 해결 방안이 진심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물음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경제적, 행정적 지원 방안은 근사할 수 있어도 현지인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면, 즉 진심을 담아내지 못하면 헛일이 되거나 군공항 이전 문제가 엉뚱한 사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6자 TF 방안이 요술방망이가 아니란 것이다. 이전 사업 파트너인 광주시는 자존심 센, 자존심에 상처 난 무안 현지인의 마음을 살 궁리를 해야 한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말이다. 문화인류학적이라고 해서 거창한 말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부르짖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제안해 성공을 거둔 것처럼 광주시는 무안 현지인에게 므므가(MMGA)를 제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즉 ‘무안을 다시 위대하게’(Make Muan Great Again)하는 지원 방안이다.
므므가의 한 예로 민간공항의 무조건적 이전이 될 수 있다. 군공항 이전과 별개로 진심을 담아 민간공항을 이전하겠다고 밝히는 것이다. 당장 어렵다면 최소한 무안국제공항이 재개항할 시점에 민간공항 이전 시기를 공식 발표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정진탄 전남본부장 겸 선임기자 chchta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