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16) 여름이 붙잡는 가을의 문턱에서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토방 앞쪽 황화국과 백일홍(위), 정자 앞쪽의 설악초(아래).
토방 앞쪽 황화국과 백일홍(위), 정자 앞쪽의 설악초(아래).

 여름이 한창인 꽃들

 입추가 지나고 처서도 지났습니다. 동양에서는 계절의 시작을 각각 입춘, 입하, 입추, 입동으로 하고, 계절의 한 가운데를 춘분, 하지, 추분, 동지라고 한다지요.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과 절기는 계절의 변화, 날짜와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알기 어려울 때도 있어서 윤달을 넣기도 하고.

 9월의 시작이니 이제 진짜 가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침과 저녁에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고, 한밤중과 새벽에는 추운 기운 때문에 이불을 끌어당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름은 아직도 한창인 게 여전히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폭염이 사그라 들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가을이 왔는데도 여름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고도 하고, 여름의 무더운 기운도 이제 가을 앞에 한풀 꺾인다고도 합니다.

 곰돌곰순이네 마당에는 노랑 코스모스(‘황화국’이라고도 하는)와 백일홍, 설악초가 한창입니다. 돌아서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곰돌곰순은, 꽃들을 보면서, 그렇구나, 우리가 노랑 코스모스, 백일홍 씨를 여기에 뿌렸구나, 합니다. 하지만 산책하다 보면, 우리가 여기에도 뿌렸다고? 할 때면, 아무래도 작년에 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나 보다, 하게 됩니다.

 6월경 무릎 높이로 자라고 있는 설악초들을 무리진 양쪽에 말뚝을 박고 삼끈으로 줄기들을 지탱해 주면, 이후 땅으로 퍼지지 않고 바르게 위로 크게 됩니다. 성장하는 걸 보면서 지탱하는 삼끈 높이를 조금씩 위로 올려주면, 삼끈은 보이지 않게 되고, 한여름에 눈이 가득 덮인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텃밭과 길목, 정원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들을 지켜보면서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꽃들을 정리할 때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곰돌곰순이, 그냥 우리가 돌아서 다니게요,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워낙에 여기저기에서 많이들 피어나고, 그 많은 꽃을 하나씩 막대를 꼽아 다 잡아줄 수가 없다 보니. 그래도 눈과 산책, 사색의 즐거움이 더 크기에 걸어 다닐 때의 작은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하고도 있답니다.

 참고로, 설악초의 꽃말은 ‘환영’, ‘축복’, 백일홍의 꽃말은 ‘행복’, ‘인연’, ‘그리움’, 노랑 코스모스의 꽃말은 ‘애정’과 ‘야성미’라고 합니다. 꽃들이 ‘환영’하니, ‘행복’ 하고, 그래서 ‘애정’하게 되나 봅니다.

탐스럽게 열린 머루포도송이들.
탐스럽게 열린 머루포도송이들.

 머루 포도알은 익어가고

 귀촌하던 해, 캠벨포도와 거봉포도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다음 해부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포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두 포도나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캠벨포도나무를 옆으로 1미터쯤 옮겼습니다. 다음 해 열매가 열리지 않을 걸 각오하고.

 헉, 세상일은 예상한대로, 각오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 캠벨포도도 그랬습니다. 작년에 잎이 나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옮겨 심다 죽기도 한다던데. 위쪽 줄기들은 고사했지만 허리쯤부터는 여전히 살아 있어서, 올해까지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올해도 대체나 잎이 나지 않았는데, 무릎 아래쪽에서 새잎이 나기는 했습니다. 올해까지 지켜보고 내년 봄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거봉은 올해도 봄에 가지들이 번져 가고 잎들이 나기 시작하더니 좁쌀무더기같은 포도송이들이 쌀무더기 크기로 커져가는 걸 지켜보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쁨도 잠시, 어느 날 말라 비틀어져가는 열매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메, 이게 어찌된 일이다냐 ~. 열매가 말라가는 걸 확인할 때는 이미 늦은 때라는 걸 알고 있으니, 거봉포도는 올해 이미 끝난 거지요. 줄기들과 잎들만 무성하게 번져 갈 뿐. 뒤늦은 후회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자책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작년까지 아무리 더웠어도, 깜빡 잊고 물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주었던 거 같습니다. 이번 해도 그렇게 했나 봅니다. 습관대로. 올해는 폭염이 날마다 “역대급”이라고 할 정도였는데도. 그렇다면, 이틀이 아니라 날마다 물을 주면서 상태를 확인해야 했었는데.

 올해도 작년처럼 하면 되겠지, 라는 안이한 마음으로 방심을 했던 거 같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게으름일 수 있겠지요. 역대급 폭염에 ‘아이구야, 움직이기도 힘들다’는 핑계를 새로 장착한 채. 줄기를 따라 좁쌀 크기의 열매들이 송이송이 매달려 커가던 앙증맞은 모습들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눈만큼 게으른 게 없고, 손만큼 부지런한 게 없다”라던 어머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긴다면서도 어찌 그걸 잊었는지. 과실수에 쏟는 정성이 가득해야 나무도 그 정성을 알고 보답을 한다는데. 곰순이 어릴 때 아빠한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던, “벼들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라고 하셨던 말씀도 늘 가슴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머루포도는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많이 열렸습니다. 오~ 근데 알맹이가 더 큽니다. 처음에 샀을 때 주인이 그랬답니다. 요건, 그냥 화분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거지, 이렇게 작은 걸 어떻게 먹어요. 그런데 귀촌해서 벽 쪽에 심은 뒤로 줄기가 커지고 가지들이 번져 가고, 열매들이 송이송이 열리는 게 놀라웠답니다. 역시, 땅심이라.

 너무 실망하거나 자책하지 말라는 자연의 위로일까요. 날마다 정자 주변을 돌면서 머루포도를 살피는데, 어떻게 된 게, 하루하루 지나니, 역시 또 소홀해지게 됩니다. 아차, 그냥 습관적으로 살펴보고 있구나 싶어, 잎들과 가지들을 들추어내고 열매들을 보았더니, 말라가는 알맹이들 사이로 여전히 탐스럽게 송이송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어휴~, 경험을 해도, 또 정신을 못차리고 있네요.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있는 곰순이.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있는 곰순이.

 블루베리와 함께 달콤한 아침을

 아침 운동을 다녀온 후에 곰순이 블루베리를 땁니다. 알맹이도 작고 늦게 익어가는 두 그루의 블루베리 나무. 대문 안쪽에 블루베리 화분이 6개 있습니다. 한 나무씩 사서 심고 가꾸다 보니 어느덧 6그루가 되었습니다. 노쇠한 듯 보이는 한 나무는 가장 큰 열매를 맺고, 다른 나무들은 중간크기 정도로 열매를 맺습니다.

 아침마다 곰돌곰순이 열매를 따면서 그 자리에서 한 움큼씩 먹고 있는데, 과일쥬스 만드는 믹서기에 넣을 때 보면, 또 양이 많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블루베리를 원 없이 먹네” 하면서 여름을 보냈는데,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아침마다 블루베리 수확이 끝나지 않습니다. 덕분에 상큼한 아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해 블루베리 나무들도 일이 있었는데, 유독 한 나무가 열매가 한참 익어갈 때 가지 끝이 말라가고 잎이 타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냥이들이 화분 위에서 자주 쉬고 있는 걸 지켜보던 곰돌곰순은, 아마 냥이들이 그 나무에 거름(!)을 많이 주었나 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그루는 다른 나무들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때서야 아주 작은 크기로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에게게, 자기야, 이거 언제 클까요, 이러다가 이대로 말라가는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세 그루 수확이 다 끝나고 열매 하나 남지 않을 때서야 비로소 두 그루의 열매들이 익어갔습니다. 그때쯤 알맹이 크기도 좀 더 커졌고.

 생각해 보니, 곰돌곰순이 여러 얘기를 나눈 후, 지난 겨울에도 블루베리 화분에 흙이 마른 게 보이면 물을 주곤 했네요. 봄부터는 이틀에 한 번꼴로 물을 주었고, 여름에 들어서서는 아침마다 물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해에 가장 많은 수확을 했고, 가장 오래 하고 있네요.

 또 생각해 보니, “역대급”으로 무더웠던 이번 여름, 꽃들과 열매들이 변덕스런 날씨와 기후 변화에도 어쩌면 절정을 뽐낼 수 있었던 건, 시기에 맞는 준비를 꾸준히 한 덕분이 아닐까. “경험에서 배운다”라고 하였으니,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아까운 생명을 더 소중히 대하려면, 일정한 루틴을 유지한 채, 때마다 변하는 상황에 늘 민감하고, 행동하기를 망설이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역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인가 봅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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