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와 니혼대 학생들이 전주 한옥마을에서 열린 한일 대학생 공감외교 행사에 참여해 부채 만들기 체험후 촬영한 기념사진. 전북대 신보람 교수 제공.
전북대와 니혼대 학생들이 전주 한옥마을에서 열린 한일 대학생 공감외교 행사에 참여해 부채 만들기 체험후 촬영한 기념사진. 전북대 신보람 교수 제공.

 지난 8월 23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사이에 정상회담이 열렸다. 양국 정상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흐름 속에 흔들림 없는 한·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한일 관계 발전이 한·미·일 공조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계속 만들어 나가자고 약속했다. 또 한국과 일본의 미래산업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등 상호 호혜적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구체적으로 저출산·고령화, 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등의 사회적 문제 해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당국 간 협의체를 구축하고, 수소·AI 등 미래첨단산업 분야에서 두 나라가 적극 협력할 것이라 밝혔다.

 같은 시간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일본 도쿄의 니혼대 학생 19명과 같은 숫자의 전북대 학생이 함께하는 ‘미래를 여는 공감, 함께 만들어가는 한일 관계’라는 행사가 열렸다. 일본 학생들이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중 이틀 시간을 내 전주를 방문해 한국 학생들과 함께 한국 과학사, 공공외교에 대한 강의를 듣고 한국문화 체험도 했다.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한국 학생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전주에서의 여러 경험을 통해 “진짜 한국”을 느끼게 되었다는 얘기에는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학교가 있는 도쿄와 서울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으며, 전주가 더 한국의 모습인 듯하다는 얘기에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의 슬로건이 생각났다. 실제 전북대는 한옥 정문을 비롯해 학교 곳곳에 전통 한옥 스타일의 건물과 시설을 갖추어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라 평가받고 있다. 학생들을 인솔해 한국을 찾은 고바야시 소메이 교수와 한일 관계와 일본의 한국학, 그리고 ‘화해학’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일 수교와 일본의 한국학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1965년 양국의 국교 정상화 시도에 대해 많은 한국인은 반대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에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한국의 계산, 한·일 수교 이후에도 한국에 대해 적극적인 후원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에 한·미·일 삼각 동맹을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구상,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찾으려는 일본의 의도가 맞물려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한국은 일본과 손을 잡았다. 양국 간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쌓여있지만, 한일협정 이후 한국과 일본은 경제, 과학기술에서 긴밀한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 확보에는 한국 기술자들이 일본 기업에서 받았던 기술연수가 크게 작용했다. 한국은 비공식 루트를 통해서라도 일본의 기술을 배우고자 했고,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한국의 일부 기업들이 일본의 상대 기업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갖고 세계시장에서 활약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대신 경제안보, 기술, 청년 교류 등 미래지향적 협력 과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진 데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모두 다른 전공이 있음에도 한국에 대한 개인적 관심 때문에 방학 중에 한국을 찾아 한국어를 공부하려는 일본 학생들에게 더욱 관심이 갔다. 전주에서의 짧은 일정 후에 개인적으로 광주를 방문하겠다는 한 학생은 한국 현대의 굴곡진 역사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한국인만은 아니라는 점을 되새겨준다.

 일본에서는 한국학을 전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으며, 드물게 한국학을 공부했더라도 현실적으로 일본에서는 안정된 직장을 찾기가 어렵다는 고바야시 교수의 설명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으로 대표되는 한국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서도 나라마다 여건이 다름을 말해준다. 이는 그에 맞는 상이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은 한국의 발전 경험을 모델로 삼아 자국에 적용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는 한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지를 모델화해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반면 일본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들이 갖는 관심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의도가 크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 속에서도 인류에 대한 보편성을 찾겠다는 이들의 관심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학문적 대상으로 한국의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인문·사회학적 분석이 요구되는 지점이며, 선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을 진흥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재검토해야 함을 말해준다.

 한국과 일본이 지닌 상이한 역사 인식,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갈등, 일본 극우세력의 혐한 움직임 등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이번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은 그러한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시사한다.

 ‘화해학(和解學 Reconciliation Studies)’은 갈등의 치유와 새로운 관계 형성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분야이다. 특히 역사적 갈등, 집단 간 적대, 전쟁 경험, 식민 지배의 상처 등을 다루며,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 회복과 공존의 기반을 모색한다. 한국과 일본은 외교적 정상화가 있었지만, 역사적 공감이나 진정한 화해는 부족했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과거를 용서하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집단 기억과 감정, 사회적 구조를 새롭게 구성하여 미래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진정한 공존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가 화해학에 관심을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까운 듯 먼, 먼 듯 가까운” 관계 ‘미래’ 모색

 흔히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멀고도 가깝다고 표현한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두 나라는 계속된 부침을 겪어왔다. ‘과거를 다 덮고 미래로만 나아가자’는 주장이나 ‘과거에 대한 분명한 시시비비의 규명이 없이는 내일이 없다’는 주장 모두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한국이 일본과 맺었던 과거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으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으며,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일본과 맺었던 관계가 한국과 다른 개발도상국 사이에도 이루어질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마련할 필요도 크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경우 협력 구조의 불균형과 최근에도 경험한 불신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동회담에서 제시된 미래첨단산업 분야의 협력은 그러한 시도를 가능케 할 단초이며, 화해학에 새로운 소재가 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건설적 미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이나 산업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문만용
문만용

 문만용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 K-학술확산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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