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공존 한반도 시대’ 긴 호흡으로 넘자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 이재명 대통령이 8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현 정부의 한반도 미래 비전이다. 이 대통령은 “평화는 안전한 일상의 기본이고, 민주주의의 토대며,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라면서 남북 간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고, 전단 살포 중단이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 선제적인 긴장 완화 조치의 필요성 또한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관계’를 노태우 정부시기인 1991년 12월 13일 남북 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 나오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 관계’라고 입장을 밝혔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선을 그은 이후 남북 관계에서 통일을 배제하는 듯한 우리 사회에의 여러 주장들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을 분명히 한 것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강조하며 우선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고 하였다.
또한 ‘공리공영·유무상통 원칙’에 따라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교류협력 기반 회복과 공동성장 여건 마련에 나서겠으며, 광복 80주년인 올해를 대립과 적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갈 적기라며 북한의 화답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기본합의서와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 선언, 문재인 정부의 9·19 공동선언 등 기존의 남북 합의의 정신들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고, 이를 북한에 공개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접경지역에 일상의 평화가 찾아오고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어 지난 정부 하에서 현격히 악화된 남북 관계에 비해서는 보다 진전된 남북 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할 뿐이다.
북한 태도는 여전히 냉랭
북한은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취한 대북확성기 철거 조치에 대해 8월 14일 김여정 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너절한 기만극”이라고 폄하하고, “서울의 대조선정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변할 수도 없다”며 “오는 18일부터 시작되는 미한합동군사연습을 통해서도 다시금 한국의 적대적실체가 의심할 여지없이 확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데 대해 여러 차례 밝혀왔으며 이 결론적인 립장과 견해는 앞으로 우리의 헌법에 고착될 것이다”라며 향후 개정되는 북한 헌법에 ‘통일’을 폐기하고 ‘적대적 두 국가론’을 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리고 김 부부장은 한국 헌법의 통일 조항과 한미 핵협의그룹(NCG), 한미연합군사연습 그리고 한국 정부의 ‘비핵화’ 입장이 북한 헌법과 충돌하는 문제를 거론하면서 “바로 이것이 오늘날 세계가 직시하는 조한관계의 엄연한 실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8월 15일 열리는 미·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를 통해 북한의 대미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서는 “개꿈”이라며 “우리가 미국측에 무슨 리유로 메쎄지를 전달하겠는가” 라고 되물으며 “미국이 낡은 시대의 사고방식에만 집착한다면 수뇌들사이의 만남도 미국측의 《희망》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이전 담화를 거론하면서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는 회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김 부부장은 “세상에서 제일 적대적인 국가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를 기대하거나 점치는 것은 사막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거듭 확인했다. 남북 관계를 교류와 협력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우리 정부의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이러한 태도가 유지되고 있는 한 남북 관계의 진전과 실질적인 교류협력의 재개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대통령도 강조했듯이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산적해 있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환경이 복잡해 지고 있다. 지난 9월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등장했다. 이러한 천안문의 모습은 일주일 전 이재명 대통령의 연이은 일본과 미국 방문, 그리고 한미일 협력 강화와 함께 72년 역사의 한미 동맹을 안보 동맹, 경제 동맹, 기술 동맹이 합쳐진 ‘미래형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선언과 중첩되면서 한반도 주변 환경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핵 없는 한반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 문제가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언급한 것처럼 미국에 맞서 다극화 질서를 구축하려는 중국 및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변화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환경은 더욱 복잡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1기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핵 무력 강화로 빠르게 나아갔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러의 다극화 구축 시도에서 경제·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현실이다. 북한이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대화와 협상 제의를 일축하는 이유일 것이다. 북미 대화가 이뤄지려면 아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쟁이 끝나고 미·러 관계가 회복해야 될 것이다.
결국 미국과 일본과의 협력을 이어나가면서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전략적으로 관리·개선해 나가면서 신 냉전의 파고를 넘어서는 우리 정부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실용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의 말처럼 ‘평화는 갑자기 오지 않고, 아주 천천히 온다’. 지금처럼 우리가 적대행위를 중단해 나가면서 북한의 호응을 유도하고, 지난 몇 년간 상실해버린 남북 간의 신뢰의 기반을 차근차근 다시 쌓아나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난 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의 이 대통령의 발언처럼 “북한이 안 웃는다고 우리도 화내는 표정을 계속하면 우리가 손해, 어떻든 간에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전쟁을 회피하고 평화를 구축”해야 하며, “아무것도 안하고 적대적으로 자극하고 대립하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평화적인 노력을 계속하니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조금의 틈이 생길 것, 그러니 길게”보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