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우리책들] 파랑 오리(2022, 킨더랜드)

파랑 오리(2022, 킨더랜드).
파랑 오리(2022, 킨더랜드).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이 완벽히 내 의견만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 별 수 없이 선택하기도 하고, 차악을 선택하기도 하고, 우연에 이끌려 선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선택은 내가 내린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책임은 단순히 나라는 사람의 안위에만 국한되지 않기도 한다. 친구로, 가족으로, 동반자로 선택한 이들에게까지 책임의 영역은 넓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고 자라 한국으로 건너와 활동중인 작가 릴리아. 그의 그림책인 <파랑 오리>(2022, 킨더랜드)는 선택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선택한 가족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파랑 오리는 비 오는 날 울고 있는 아기 악어를 만난다. 잠시 그를 따뜻하게 돌봐주었지만 아기 악어의 평생을 책임질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아기 악어가 잠에서 깨어나고 가장 처음 본 자신을 엄마라고 생각해 울기 시작하니, 파랑 오리는 그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졌다. 이것이 파랑 오리의 선택이다.

 파랑 오리는 늘 아기 악어를 지켜주었어요.

 “그건 안 돼! 너는 아직 아기란 말이야.”

 파랑 오리는 악어를 매일 깨끗이 씻겨주고,

 물을 무서워하는 악어에게

 매일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

 둘은 처음 만났던 파란 연못에 누워 낮잠을 자곤 했어요.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엄마야.’

 <파랑 오리> 중에서.

 선택은 이어진다. 아기 악어를 돌봐주기로, 그리고 그 선택을 파랑 오리는 후회하지 않는다. 파랑 오리의 사랑에 힘입어, 아기 악어는 점점 더 건강하고 멋지게 커간다. 머리도, 콧구멍도, 꼬리도, 발도 아주 거대해진다. 점점 악어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다. 파랑 오리는 두렵지 않았다. 악어라고 해도 자기 아이니까. 그는 다 자란 악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든든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파랑 오리가 기억을 잃기 시작한다. 파랑 오리는 매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악어는 매일 똑같은 대답을 해준다. 파랑 오리가 잘 걸을 수 없게 되었대도 괜찮다. 악어가 그를 안고 파란 연못으로 가 줄 수 있으니까.

 ‘엄마, 자요?

 엄마가 가끔 화를 내고, 길을 잃어버리고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파랑 오리> 중에서.

 이것이 악어의 선택이다.

 <파랑 오리>는 오리와 악어의 선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들이 오리와 오리였다면, 혹은 악어와 악어였다면 선택의 무게라는 것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리는 자신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존재를 사랑으로 키우기로 선택했고, 악어는 ‘친족이 아닌’ 존재를 사랑하여 엄마로 부르겠다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한 선택은 한참 예전에 일어났을지 모른다. 악어가 오리에게 처음으로 엄마 하고 불렀을 때, 그 때 이미 악어는 첫 번째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악어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로 한다. 그 책임은, 사랑은, 엄마가 나를 더 이상 사랑으로 키우는 존재가 아니더라도 계속된다. 누군가는 피가 섞이지 않은 존재를 어떻게 그리 책임질 수 있냐는 질문을 하겠지만, 선택이야말로 이 책임을 기껍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이유다. 사랑을 선택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커다란 사랑의 증명이다.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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