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속에 스며든 일본 신, 그 뿌리는?
최근 한국에서 ‘아마테라스’라는 일본 신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아마테라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를 즐겨본 매니아들 사이에서나 주인공 우치하 일족이 사용하는 초강력 술법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제는 일반 국민들조차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지난 7월 김건희 특검팀이 건진법사의 법당을 압수수색하던 중 2층 거실과 연결된 비밀의 방에서 아마테라스상을 모신 신당을 발견(중앙일보 7월 16일 기사 참조)한 뒤 벌어진 현상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건진법사가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자 신도(神道)의 주신으로 일컫는 아마테라스를 모신 건 한국 전통 무속이 일제시대 신사 참배 등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한다. 건진법사의 무속이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다만 한국 무속에 신도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섞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마테라스는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2025년 대한민국 정가를 뒤흔드는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되었을까.
‘김건희 특검’발 건진법사 무속 신앙
아마테라스의 정식 명칭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로, 여신이면서 태양신·황조신(皇祖神)·농경신·직조신(織造神) 등 다양한 신격을 가지고 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일본 신화에서 황조신 아마테라스는 제1대 천황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의 5대조에 해당하고, 이로써 역대 천황은 일본의 통치자이자 신도(神道)의 수장이 되었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일본 천황은 두 번의 즉위식을 치른다. 먼저 일반적인 즉위식에 해당하는 천조식(踐祚式)을 치루고, 천조식이 상반기에 있으면 그 해 11월에 두 번째 즉위식인 대상제(大嘗祭)를 치른다. 대상제는 새로운 천황이 황조신(皇祖神) 아마테라스를 영접하는 제사다. 대상제를 치러야만 진정한 천황으로 인정받았는데, 일본 역사상 천황권이 약했을 때는 대상제가 생략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의식적으로 일본 천황을 일왕이라 일컫지만, 이는 일본 사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천황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통치자를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아닌 역사용어로 일본의 고래 종교인 신도의 수장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천황은 황조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자 살아있는 신, ‘아키츠가미·아라히토가미(現人神)’였다. 천황과 신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신도(神道)에서 신은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영원불변한 신들의 영역인 상세(常世)에서만 생활한다. 신은 현세에서 제례가 이루어질 때 상세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준 뒤 다시 상세로 돌아간다. 따라서 신사에는 항상 신이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고, 마쓰리(제사)가 행해질 때만 강림하는데, 이때 신령이 잠시 머무는 물건이 ‘신체(神體)’다. 강림한 신은 그 모습을 인간에게 보이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신이 깃들 ‘신체(神體)’가 필요하다. 신체 그 자체만으로는 신이 될 수 없고, 신령이 그곳에 머물러야 처음으로 신이 되기에 신체를 신의 ‘요리시로’ 혹은 ‘미타마시로’라고 불렀다. 이른바 일본 신은 800만이나 된다고 하니 신의 성격에 따라 신체도 다양하다. 검·경·옥의 ‘3종 신기’가 대표적인 신체라고 할 수 있다. 신체는 신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여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신사에 봉사하는 신관조차도 만질 수 없다. 신사의 주요 건물은 크게 배전과 본전으로 나뉘는데. 일반인은 배전 앞에서 기도할 수 있지만, 신체를 모시는 본전에는 접근할 수 없다.
태양신 아마테라스도 그 모습을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테라스의 신체는 팔척경(八○鏡)이라 불리는 거울이다. 일본 신도에서 아마테라스의 신상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아마테라스를 숭배한다면 팔척경을 모시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아마테라스의 신체가 아닌 상을 모신걸 보면, 건진법사의 신도에 대한 이해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태양신, 한국 무속에 포섭
메이지 신정부는 근대 천황제라는 정치시스템을 마련하고, 일본 국민의 사상적 통합을 위해 신도를 국교화하는 국가신도(國家神道)를 제창했다. 국가신도는 일본 국민의 사상통합뿐만 아니라 일본의 영토 확장과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는데도 이용되었다. 1871년 가장 먼저 삿포로신사(홋카이도신궁)가 세워지고, 청일전쟁에서 획득한 타이완에는 1900년 타이완신사를 시작으로 130여 개의 신사가 건립되었으며, 러일전쟁으로 획득한 가라후토(사할린)에는 1910년 가라후토신사를 비롯해 127개의 신사가 들어섰다. 조선에서는 1919년 조선신사(1925년 조선신궁으로 개칭)를 시작으로 74개의 신사가 창건되었고, 나중에는 소규모의 신사가 각 면마다 1개씩 총 300여 개의 신사가 건립되었다. 각 지역에 세워진 신사의 대장격인 삿포로신사·타이완신사·가라후토신사에는 개척 삼신, 즉 대국혼명(大國魂命), 대기귀명(大己貴命), 소언명명(少彦名命)이 모셔진 반면, 조선신궁(아마테라스와 메이지천황을 모심) 이후 타 지역에 세워진 신사는 모두 아마테라스를 모셨다. 1930년대 황민화정책으로 조선에는 1면에 1개의 신사를 세우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때 창건된 신사에 배향된 신이 모두 황조신 아마테라스였다. 이 말은 조선인에게 가장 익숙하고 잘 알려진 신도의 신은 아마테라스였다는 점이다.
우리 조상들은 많은 토착신들을 모셔왔다. 무속의 신은 원체 넓고 깊어 천신과 영웅신·장군신, 서낭신을 모두 아우른다. 천신은 단군, 영웅신은 조선 태조·단종·세조·고려 공민왕이고, 장군신은 김유신·최영·임경업·남이·관우·맥아더 등이다. 특히 장군신은 영웅신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위대한 힘을 가진 영웅이거나 아니면 억울하게 죽어 그 업적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못 받은 인물들이다. 따라서 한국 무속의 신들은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향되던 일본 신까지 한국 무속에 포섭된 것이다. 한국 무속의 포용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강은영(전남대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