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다움’ 전국 복지 정책 표준 되다
신청주의 넘어선 발굴주의, 돌봄 패러다임 바꿔
시행 2년 만에 국회 입법화…내년 3월 전국 확대
광주·전남은 산업, 복지, 환경, 교통 등 현안들이 산적해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각종 정책들은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본보는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탄생 배경부터 현 상황과 과제를 점검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광주시의 대표 복지정책 ‘광주다움 통합돌봄’이 대한민국 돌봄정책의 표준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3년 4월 서비스 개시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돌봄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전국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국내 복지체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신청주의·선별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내년 3월에는 전국에서 시행된다.
이 사업은 민선 8기 강기정 시장의 복지 분야 핵심 공약 1호였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개인이나 가족에게만 맡기지 않고,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빈틈없는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복지는 신청이 아니라 발굴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광주다움 통합돌봄 사업은 결국 기존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지평을 열었다.
광주다움 통합돌봄은 단순한 복지 서비스의 확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겪어온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으로 시작됐다. 노인 인구의 증가, 1인 가구 급증, 장애와 질병으로 인한 돌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기존의 틀 안에서는 지원이 닿지 못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돌보던 가족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주소지 요건 때문에 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특히 제도가 있어도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고, 신청해도 복잡한 심사 절차에 막히는 상황이 되풀이돼 왔다. 광주시는 이 문제를 복지의 근본적 전환으로 받아들였다. 돌봄의 권리를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신청주의·선별주의를 넘어 보편주의·발굴주의로 바꿔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것이 ‘광주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정책화된 이유였다.
2023년 3월 28일, 광주시는 5개 자치구와 합동으로 선포식을 열고 새로운 돌봄체계의 출발을 알렸다. 광주시는 출범 전부터 자치구 실무자, 민간 수행기관, 전문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전담팀을 꾸렸다. 수십여 차례의 회의가 이어졌고, 그 결과 시민 누구나 한 통의 전화만으로 서비스를 연결받을 수 있는 ‘돌봄콜(1660-2642)’ 단일 창구가 만들어졌다. 신청하지 못하는 위기가구는 공무원이 직접 찾아가는 ‘의무방문’ 체계도 포함됐다. 기존 제도가 가진 가장 큰 한계였던 ‘몰라서 못 받는 돌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사각지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대안책이었다. 서비스 시행 첫날부터 현장은 달라졌다. 각 동 행정복지센터의 사례관리 담당자들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상황을 확인했고, 필요한 경우에는 1대1 맞춤형 돌봄계획을 세웠다. 제도권 서비스로 해결할 수 있으면 우선 연결하고, 틈새가 생기면 ‘광주+돌봄’으로 보완했으며, 위기 상황에는 긴급돌봄이 가동됐다.
서비스가 본격화되자 현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행 첫 주에만 750건이 넘는 신청이 들어왔고, 하루 평균 150건 이상 요청이 접수됐다.
식사조차 어려웠던 암 환자, 주소지 문제로 기존 지원을 받지 못했던 고령자,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청년, 오랫동안 고립돼 있던 1인 가구까지 제도의 문턱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이 비로소 돌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행정지원이 아니라 생활 속 빈틈을 메우는 서비스도 제공됐다. 가사지원과 식사지원, 병원 동행, 건강 돌봄, 안전 확인, 주거 수리, 단기보호 등 7대 서비스는 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기반이 됐다.
광주의 실험은 곧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2024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돌봄통합지원법’인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은 광주 모델을 토대로 설계됐다. 내년 3월부터는 전국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지자체가 중심으로 통합돌봄을 운영하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월 광주를 찾아 “광주의 경험을 전국 확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역시 광주 사례를 집중 조명하며 “돌봄은 신청이 아니라 발굴이고, 개인이 아닌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광주다움 통합돌봄은 국내외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2023년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국제도시혁신상 최고상을 시작으로, 2024년 정부혁신 대통령상, 2025년 한국정책대상 대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복지정책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 사례라는 의미였다.
과제도 있다. 수요가 늘어날수록 예산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현재 연간 100억 원 안팎의 시 예산이 투입되지만,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는 여전히 논의가 필요하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국민의 삶을 돌보는 정책이지만 내년 전국화하는데 예산이 적게 편성돼 있어 확대가 필요하다”며 “전국 시행을 앞둔 돌봄통합지원법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경훈 기자 hu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