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광역시 최초 당직제 폐지…AI 86% 응대
당직수당 90% 절감, 재정 효율성까지 확보
“비효율적 제도 개편” 대통령 지시 전국 확산
광주·전남은 산업, 복지, 환경, 교통 등 현안들이 산적해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각종 정책들은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본보는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탄생 배경부터 현 상황과 과제를 점검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광주시는 지난해 8월 1일 특·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당직근무제를 전면 폐지했다. 수십 년간 공직사회에 굳어진 제도를 없애기로 한 결정은 단순히 근무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직원 복지와 행정 효율성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겨냥한 파격적 변화였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취임 초기부터 “비효율적인 당직근무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안고 있었다. 야간·휴일에 접수되는 민원 대부분이 긴급처리가 필요 없는 단순안내나 타 기관 이첩 민원인데, 이를 위해 직원들이 숙직을 서고 다음 날 대체휴무를 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실제로 2023년 접수된 당직민원 1592건 가운데 86%가 교통불편, 주취자 신고 등 단순민원이었다.
이로 인해 매달 100여 명의 직원이 당직 후 업무공백을 남겼고, 행정 능률 저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강 시장은 직원들과의 소통 과정을 통해 해법을 모색했고, 결국 재난안전상황실로의 통합 운영과 AI 기반 민원처리 시스템이라는 대안을 찾아냈다.
광주시는 당직제 폐지와 함께 인공지능(AI) 보이스봇 ‘AI 당지기’를 특별 채용했다. 이 시스템은 음성·보이는 ARS 방식으로 민원을 자동 접수한 뒤, 해당 자치구나 사업본부 등으로 연결해준다. 즉각 처리할 수 있는 단순 민원은 AI가 직접 응대하고, 복잡하거나 긴급한 사안은 담당 부서에 전달되는 구조다.
시범 운영을 거쳐 정식 가동된 AI 당지기는 곧바로 효과를 입증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11개월 동안 접수한 민원은 2만 1648건. 이 중 1만 8540건(86%)을 AI가 자체 처리했고, 나머지 2473건은 해당 기관으로 연결했다. 덕분에 직원이 직접 응대해야 하는 건수는 하루 평균 20건에서 8건으로 60% 감소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당직제에서는 근무 후 대체휴무로 인해 일상 업무가 공백을 빚었지만 AI 당지기 도입 이후 이러한 문제는 사실상 사라졌다. 아울러 연간 9000만 원에 달하던 당직수당 예산이 900만 원 수준으로 줄며 약 90% 절감 효과도 나타났다.
광주시는 당직제 폐지로 단순히 직원 복지 향상에 그치지 않고 행정 효율성에서도 뚜렷한 변화를 확인했다. 민원인의 편의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전에는 당직자가 해당 기관 번호를 안내하면 민원인이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AI 당지기는 자동 연결과 문자 안내까지 제공한다.
시민 만족도뿐 아니라 대외적 평가도 뒤따랐다. 광주시는 지난 5월 ‘제1회 지방정부 인공지능 혁신대상’에서 공공행정 부문 수상기관으로 선정됐고, 6월에는 정부혁신 멘토링을 타 지자체에 전파했다. 다른 광역시와 기초단체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광주를 찾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정치권에도 파급효과가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7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비효율적인 당직제도를 전면 개편하라”고 지시했는데, 사실상 광주 모델이 전국 확산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혁신이 항상 긍정적인 성과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령층 민원인의 경우 AI 시스템의 음성 응답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단순히 안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긴급한 고충이 즉각적으로 처리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민원의 다수가 단순 민원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돌발 상황이나 위기 상황이 포함되기도 한다. AI 응대 과정에서 이 같은 특수 사례가 놓치게 된다면 시민 불편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또한 AI 민원처리가 효율성을 높였지만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 오류에 따른 책임 소재 등 새로운 잠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이를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광주시는 지난해 8월 당직근무에 따른 직원 업무 피로도와 당직휴무로 인한 업무공백 해소를 위해 특광역시 최초로 당직제도를 폐지했다”며 “직원들과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인공지능(AI) 당지기’라는 개선방안을 도출한 AI 시대 혁신사례로 앞으로 AI 기술을 행정 전반에 확산해 효율적이고 스마트한 시민중심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전경훈 기자 hu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