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

우치동물원 쌍봉낙타 봉봉이.
우치동물원 쌍봉낙타 봉봉이.

 십이지신에서 쥐가 첫째로 나오는 이유는 둘째로 나오는 소 위에 올라타고 가다 맨 먼저 결승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경쟁은 무조건 빨라서만 이기는 게 아니고 지략도 뛰어나야 이길 수 있다. 의도치 않는 승리도 있다. 칭기즈칸은 비록 그 당시 세계의 거의 전부를 정복했지만 그를 그곳으로 이끈 건 결국 말과 쌍봉낙타였다. 그럼 어쩌면 진정한 정복자는 말과 쌍봉낙타가 아닐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하는데, 그들은 정복자들을 이동시키기만 했지 정작 피비린내 나는 진흙탕 싸움을 그들 위에 탄 인간들만 하고 그들은 정복을 기쁨을 함께 누렸다. 정복의 열매는 비록 풍성한 신선한 물과 풍부한 먹이 조금이었지만 그들은 덕분에 세상을 주유했으니 나름 행복한 동행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쌍봉낙타는 그들과 함께 사는 인간들과 닮아선지 말 그대로 다혈질이다. 성질이 나면 입에 하얀 게거품을 잔뜩 물고 달려든다. 껑충껑충 뛰면서 온갖 성질을 다 부리다가도 금방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얌전히 앉아서 되새김질하며 시치미를 뗀다. 그래도 그들이 그리 밉지 않은 게 의외로 능청스럽고 귀엽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고집은 세지만 또 말도 고분고분 잘 들어서 이런 고운(?) 심성을 간파한 인간들에 의해 소나 말보다 조금 늦은 기원전 2세기경에 길들어졌다. 그리고 금방 거의 모든 야생의 쌍봉과 단봉 낙타들이 순식간에 가축화되어버렸다. 이렇듯 커다란 낙타과 동물들이 쉽게 가축화된 배경에는 그들이 사는 곳이 척박한 사막이 있다. 자연 오아시스에 의지하고 살던 낙타들은 사람들이 그곳을 차지해서 물 주권을 가져가 버리자 그들의 생존을 전적으로 사람들한테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단봉낙타들은 온전히 가축화되어 버렸고 쌍봉은 다행인지 현재 몽골 고비 사막에 900마리 정도 1만 년 전 상태 그대로의 야생 무리가 남아있다고 한다.

몽골 초원의 쌍봉낙타들.
몽골 초원의 쌍봉낙타들.

 낙타는 인간에게 자기의 힘과 등을 내주고 인간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물과 식량을 제공했다. 낙타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5배 이상의 시간을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고 황량한 사막을 등에 200kg의 짐을 메고 하루 40km의 속도로 매일 걸어갈 수 있다. 고비 사막은 때론 영하 30℃ 이하로 떨어지고 한낮엔 영상 40℃ 가까이 오르기도 하지만 낙타는 감기 한 번도 안 걸리고 개의치 않고 걸어간다. 이런 쌍봉낙타의 지구력은 호전적이거나 사업가 기질의 사람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복욕과 개척심을 자극했다. 칭기즈칸 몽골에서는 쌍봉낙타가 밟는 땅이 곧 그들이 영토가 되었다. 그 길이는 동서로 6000km가 넘었다. 마르코폴로는 이 쌍봉낙타 등에 올라 이 땅을 함께 걸었으며 희대의 기록인 ‘동방견문록’을 남겼다. 원래 제목은 ‘세계의 서술’이라고 한다.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 그 당시 몽골제국이 곧 세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나라에 쌍봉낙타가 처음 소개된 건 기록상으론 고려 태조 왕건 때였다. 왕건은 부여를 멸망시킨 거란을 증오하여 그들이 친선사절로 보낸 쌍봉낙타 50마리를 만부교 아래서 굶겨 죽였다.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사건이었지만 죄 없는 낙타를 잔인하게 죽인 것은 지금으론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 오히려 조선 태종 때의 코끼리처럼 차라리 유배를 보냈으면 어땠을까!

 단봉과 쌍봉은 누가 셀까? 원래 사는 곳이 다르니 별 의미는 없지만, 쌍봉이 덩치가 더 크고 지구력도 강하다. 털이 많아 훨씬 크게 보이기도 한다. 흥분하면 침도 더 많이 뱉고 아드레날린도 더 분비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덩치 큰 쌍봉낙타가 승일 듯. 단봉은 혹 위에 안장을 얹고 타기 때문에 자세가 높고 불안하지만, 쌍봉은 두 봉우리 사이에 끼어서 타기 때문에 편안하다. 비행기로 치면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 정도 차이일 것이다. 물론 풍겨오는 향긋한(?) 털 냄새는 감내해야 한다.

 우치동물원 ‘봉봉이’는 쌍봉낙타였고 초식동물사에서 왕으로 군림했다. 그가 성질내면 모두가 구석지에서 움츠려야 했다. 한번은 양털을 깎다가 양들을 괴롭히는 걸 본 쌍봉낙타가 우리를 응징하러 침을 난사하며 들이닥쳐 모두가 혼비백산 피한 적이 있다. 쌍봉은 사람에게 잘 길들어져서 몽골 기병과 같이 한 때의 영화를 누린 적도 있지만, 그보단 그는 다른 동물들에게 늘 친절하고 맏형 같은 힘과 의리가 더 뿜뿜한, 지금도 변치 않는 위대한 정복자이다.

 최종욱 수의사

 ▲쌍봉낙타 (Bactrian camel, Two-humped camel)amel, Two-humped camel)

 - 학명 : Camelus bactrianus

 - 분류 : 척삭동물 > 포유강 > 우제목 > 낙타과 > 낙타속 > 쌍봉낙타(2종/야생1종)

 - 크기 : 어깨 높이 1.6~1.8m, 머리와 몸통 길이 2.25~3.5m, 꼬리 길이 35~55cm다. 수컷은 약 600kg, 암컷은 약 480kg 정도

 - 식성 : 초식성(풀, 과일, 나뭇잎), 배고프면 사체를 비롯 텐트, 천 등을 먹기도

 - 수명 : 평균 18~30년, 최대 50년을 살기도

 - 서식지 : 사막, 스텝, 초원, 카자흐, 몽골, 중국 북부

 - 번식 : 보통 우기인 겨울철에 출산, 임신기간은 360~440일이다. 보통 한 마리 출산,

 수유기간은 약 1.5년이다, 성성숙 3~5년

 - 천적 : 몽골늑대, 눈표범

 - 멸종위기등급 : 야생 쌍봉낙타는 위급(CR, Critically Endangered, 출처 : IU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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