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우리책들] 탄 빵(2017·킨더랜드)
현대사회, 특히 한국의 현대사회는 손해와 이익에 대한 계산이 끝없이 계속되는 세계다. 감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사회에 소속돼 있기 위해, 덜 힘들기 위해서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을 강구한다. 하지만 과연 손해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걸까? 손해를 봐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영원히 나의 손익이 더하기의 영역으로 기울어져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말인가?
짧은 글밥과 크레파스로 뭉개 그린 것 같은 그림은 따스함을 가슴 한가운데에 톡 떨어뜨린다. 이나래 작가의 ‘탄 빵’(2017 킨더랜드)은 손해를 보아야만 하는, 손해를 보기로 결정한 이들의 이야기다. 아침이 되어 동물들은 밥을 하기 시작한다. 토스터기에 식빵을 하나 넣고 적당한 시간을 기다려 노릇노릇 구워진 아침을 준비한다. 기린, 토끼, 얼룩말, 박쥐, 너구리, 그리고 거북이. 여섯 친구들은 아침마다 각자 구워낸 빵을 여섯 조각으로 잘라 서로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거북이는 항상 빵을 태워먹는다.
오늘도 거북이 빵이
타 버렸습니다.
슥삭슥삭
슥삭슥삭
한 조각씩
거북이 빵도 한 조각씩
잘 먹었습니다.
‘탄 빵’ 중에서.
알록달록 다른 동물들의 빵은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거북이의 빵은 그 중에서도 눈에 띈다.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으니까. 탄 빵을 먹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한 조각이라도 그것은 까슬거리고, 맛도 좋지 않고, 누군가는 그것이 암을 일으킨다고 하기도 한다. 탄 빵은 버려버리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다면 거북이는 평생 아침을 먹지 못하는 걸까? 거북이가 매번 빵을 태워먹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뭐, 단순히 그가 게으르고, 하는 일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거북이는 다른 동물들보다 걸음이 느린 걸 수도, 아무리 일찍 움직인다고 해도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느린 걸음을 가늠해서 미리 움직인다는 것이 불가능한 사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거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탄 빵을 먹을 수밖에 없는 동물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다.
다시 질문해보자. 거북이는 평생 아침을 먹지 못하는 걸까?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자신이 태워 먹은 빵이니까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다른 사람이 대신 빵을 구워줄 수는 없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린, 토끼, 얼룩말, 박쥐, 너구리가 그랬던 것처럼 빵을 나눠 먹을 수는 있다. 조금 덜 비유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모두들 조금씩 손해를 보며 살면 된다는 것이다.
손해 보지 않고 살아도 될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수많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 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더 자주, 더 심하게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으니 너 혼자 손해를 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손해를 같이 감수해주는 일이 아닐까?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