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중국차(茶)] (82) 차인의 기본자세: 조차담반(粗茶淡飯)
진짜 ‘차인’이라면 오직 맛·향에 집중해야
차를 마시는 행위는 그 차가 가진 성질을 정확히 파악해 가장 좋은 맛과 향을 보여주는 사람과, 그 차를 맛있게 마시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중국에서는 전자를 포차인(泡茶人)이라고 하고, 차를 우리는데 여러 엄격한 규율이 뒤따른다. 요즘 시중에 나가보면 차인이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상인들마저 기초지식이 결여되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해 보이곤 한다. 중국차를 우려낼 때 하는 기예 가운데 대표적인 몇 가지와 함께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골라봤다.
▲고충(高衝): 일부의 차인들이 보기 좋게 멋 부리는 행위 가운데 하나가 고충(高衝)이다. 고충은 보통의 높이에서 물을 부어주면 잘 섞이지 않는 조형녹차(條形綠茶: 나뭇가지처럼 쭉쭉 뻗은 모양의 차로써 안길백차, 황산모봉 등이 있음) 혹은 찻물을 부으면 위로 떠 오르는 금호(金毫)가 많은 고급 홍차 등이 대상이다. 이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물의 낙차를 이용, 뒤집고 굴려주어 물이 모든 차에 골고루 스며들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고충은 물의 온도를 떨어뜨려 차탕의 구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끓는 물을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뜨리는 몇 초 간의 시간에도 물은 공기와 접촉하여 대량의 열량을 손실하게 된다. 특히 겨울철 온도가 낮을 때 수온은 더 낮아지게 된다. 혹자가 말하는 “차에다가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해 주기 위해서”의 이유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고, 오히려 우려낸 찻물에서도 산화(酸化)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봉황삼점두(鳳凰三點頭): 점두(點頭)는 중국어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라는 뜻이고, ‘봉황삼점두’는 봉황이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과 같이 차를 우려서 대접하는 손님을 공경한다는 뜻이다. 중국 다예(茶藝) 가운데 전형적인 기능과 예술이 결합 된 것이며, 고급 녹차나 홍차를 우려낼 때 쓰는 수법이다. 위에서 언급한 고충(高衝)은 바로 봉황삼점두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구체적인 요령으로는 낮은 곳에서 물을 따르기 시작하여 높은 곳으로 이어지는 동작에서 물이 끊기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게 한다. 기울여주는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끌고 당기는 모양으로 물을 채워준다. 이 동작을 세 번 반복하며, 찻잎이 물속에서 서로 뒤집히며 물을 충분히 흡수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내외협공(內外挾攻): 또 다른 불필요한 동작으로는 내외협공(內外挾攻)이 있다. 일반의 녹차에 비해 내포성이 긴 홍차나 우롱차·보이차 등의 발효차를 우려내다 보면 후반으로 갈수록 탕속에 녹아 나오는 용출 속도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때 차탕을 좀 더 빨리 우려내기 위해, 내(內): 찻주전자 안에 끓는 물을 붓고, 외(外): 주전자 밖에도 물을 부어주어 동시에 안팎에서 차를 쳐준다. 이렇게 내외협공은 오직 차가 더 빨리 우러나게 함에 그 목적이 있다. 한국이건 중국이건 자칭 ‘차인’이라는 사람들 상당수가 차를 우리면서 범하는 그릇된 행동이다. 게다가 차의 용출량이 많은 제1탕부터 시작하여 매번 자사호 바깥에 물을 끼얹는 동작은 차를 우려내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과유불급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 없이 행해지는 동작은 없다.
▲탕호(燙壺):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내외협공과 탕호(燙壺)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탕호는 차를 우리기 전 끓는 물로 자사호를 씻어주어 자사호 안의 잡냄새를 제거하고, 호를 예열해 주는 과정이다. 특히 탕호의 예열 과정이 필요한 경우는 차가운 겨울철 실내에서 난방이 없는 중국의 강남 지역에서 청수니(淸水泥) 자사호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강남이 비록 겨울철 날씨가 비교적 따뜻한 곳이라고 해도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이런 날씨에 예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밀도가 높은 청수니호에 끓는 물을 직접 부었을 때, 호는 갑작스러운 팽창으로 인하여 금이 가고 만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단계석이나 섭연 등의 고급 돌다반 역시 같은 이치로 금이 가는 경우를 필자가 직접 목도한 바가 있다. 난방이 잘된 한국의 가정에서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이제 본론이다. 조차담반(粗茶淡飯)은 ‘거친 등급의 차와 반찬 없는 밥’이라는 뜻이니 변변치 않은 차와 밥을 말한다. 이 연재 초반에 설명했던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이 말을 풀어보면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게,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게”라는 뜻이 된다. 차나 다구를 파는 것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상인도 필요 이상으로 매장에다가 물건을 진열해 놓지 않는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고, 그 빈 수레를 피하는 것도 소비자의 지혜이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나의 심신 수양을 위한 것이지, 남에게 거들먹거리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시중의 유한마담들이 은연중에 자랑하는 얼마짜리 옷을 입고, 작가 누구누구가 만든 그릇으로 차를 마셔야지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차를 우리는 것은 과시용이 아니기에, 우려내고자 하는 차의 제조 방식과 찻잎의 크기에 따른 물과 다구의 선택, 투입량, 물의 온도, 우려내는 시간 등에 더 집중하여 그 향과 맛을 최대치로 올려주는 것이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지혜인 것이다.
류광일(덕생연차관 원장)
류광일 원장은 어려서 읽은 이백의 시를 계기로 중국문화에 심취했다. 2005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사범대학에 재학하면서 덕생연차관 주덕생 선생을 만나 2014년 귀국 때까지 차를 사사받았다. 2012년 중국다예사 자격을, 2013년 고급차엽심평사 자격을 취득했다. 담양군 창평면 덕생연차관에서 차향을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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