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나주박물관서 마주한 마한

박물관의 옹관들.
박물관의 옹관들.

 가을이 되면 바뻐지는 것이 영산강 유역의 사람들이다. 수확의 계절이니 당연지사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또 다른 일들이 강변의 사람들을 바쁘게 한다. 바로 대한민국의 뿌리를 형성했던 기질에서 우러나오는 축제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의 의미로서 한가위는 물론, 마을 단위의 각종 행사와 이벤트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영산강 문화축제를 하는 나주시는 천년목사고을답게 메가 이벤트로서의 놀이와 공연 상을 차려 방문객을 유인한다.

 해남에서는 맛의 축제라는 미남축제를 개최하며 국토의 끝자락에서 맛의 진원지임을 세상에 발신한다. 영암에서는 월출산을 장식할 국화축제와 마한역사문화제, 한옥비엔날레 등을 개최하며 ‘마한의 심장’이라는 슬로건이 허언이 아님을 만방에 알린다.

마한여행기 정은영작가의 강좌.
마한여행기 정은영작가의 강좌.

 이런 저런 사이에도 전남문화재단의 국가유산연구소는 마한관련 국제포럼을 개최했고, 영암에서는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란 책을 써서 마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낸 정은영 작가를 모신 작가와의 대화 모임도 가졌다. 거기에 영암군의 내동리 쌍무덤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2년전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유치된 것에 기쁨을 두배 더 하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없으면 유산은 방치되거나 흉물로 변하고 만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의 지자체는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유적지 보호와 홍보에 진심이다. 그런 덕분에 마한만을 담아낸 국립나주박물관이 생겨났을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이 임진왜란 중심의 박물관이라면 전라도에는 마한의 역사와 유물을 담아낸 마한박물관이 있음을 나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신촌리 발굴 금동관.
신촌리 발굴 금동관.

 나주 반남의 핑크뮬리와 왕관제

 매년 이맘때면 핑크뮬리가 하늘거리는 나주 반남의 박물관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국적인 벼과의 이 식물은 환경부에서는 유해종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제주를 비롯해 강원도까지 9월부터 11월까지 몽환적인 자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서부 지방이 원산지라고 하는데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관상용에 사진 스팟으로 그만이기 때문에 사업자나 자치단체가 앞다퉈 심는 것이라 여긴다.

 고분과 어우러져 피어난 나주박물관의 핑크뮬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러하다. 이에 맞춰 반남면 사람들은 마한왕관기념문화제를 25일 개최한다. 신촌리에서 발굴된 왕관의 상징성을 살리고자 하는 지역민의 염원이 담긴 행사로 보인다. 이런 왕관은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서도 편린이 발견 되었다. 형체가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마한이 백제에 복속되었다는 역사적 기록이나 백제 문화의 아류가 아닌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고대국가라는 이야기가 힘을 얻고 있다.

달빛에 그을리면 전설이 된다.
달빛에 그을리면 전설이 된다.

 입말로 이어진 역사, 마한의 진실을 되살리다

 문자로 정립되지 않은 것, 유물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사실 힘을 얻을 수 없는게 사학계의 정석이다. 그럼에도 문자 이전의 사회는 유적과 유물에서 추론되는 다양한 가설을 상재하게 만든다. 거기에다 또 강력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입말이라는 이야기가 갖는 역사성과 전이성이다.

 대구에 있는 나의 벗 신동호 소장과 구술과 문자문화에 대한 대화를 하다 그가 “햇볕에 바라면 신화가 되고, 달빛에 그을리면 전설이 되고, 삼대가 우기면 진실이 된다”라며 입말의 힘을 이야기 할때 한참을 웃었지만 그게 웃을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아 무등산 아래 충효동 마을의 김덕령 장군 전설이 깃든 충효동왕버들과 그 앞 말무덤에서 실체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장군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는 왕버들의 나이 측정이 정말 딱 들어 맞았고, 타고 다니는 말의 무덤으로 늘상 이야기 되던 마총이 어느 날 언어의 무덤인 언총까지 겸하게 되는 상황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그런 즉, 마한의 역사는 백제 근초고왕때 복속되었다는 기록이 다는 아니다는 것으로 마한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대외교류활동도 활발해서 여기저기 고분에서 중국의 도자기나 일본의 흑요석, 동남아의 구슬들이 출토되는 것을 봐도 근초고왕때 마한의 역사가 멈춘 것이 아니라는 설을 설득력 있게 증빙한다. 2019년 담양의 대전면 태목리와 응용리의 선사주거지 발굴 보고 현장을 참관할 때 아궁이와 구들의 흔적으로 짐작할만한 구조가 보여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본격적인 정착생활의 단계에서 한국의 기후 구조와 어울리는 최적의 집을 만들어가는 대역사에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이 감동스러웠다.

영암 태간리 자라봉고분은 장고형의 모습을 띤다.
영암 태간리 자라봉고분은 장고형의 모습을 띤다.

 문화의 힘 느껴져

 국립나주박물관을 관람하는 것도 그런 경험과 다르지 않다. 98여곳에 이르는 영산강 유역 독널 고분의 분포지도만 봐도 54개의 소국으로 이뤄진 연합체가 구축한 문화의 힘이 느껴진다. 독널의 탄생이 담긴 유물을 보니 초창기 독널은 죽은 아이를 담아 묻어주는 구조에서 시작해서 점차 성인까지, 뒤이어 가족 단위의 무덤형태로 커져나가게 되었음을 전시물을 통해 보여준다. 그 무겁고 튼실한 독널을 만들기 위해 힘썼던 선사인들은 만드는 것을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육로와 물길을 이용하여 강변의 여러 부족들과 교류하였을 것이다.

 독립국가체제가 구축되지 않은 그 상황에서는 서로를 침범하거나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면 모두가 평화롭게 자신의 잉여를 타자의 절실함과 교환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증표들이 전시관의 껴묻거리와 관련한 세션에서 보여진다. 이생에서의 삶이 다 이뤄지지 못했으니 내생에서도 잘 살아달라는 의미에서 무덤의 부장품들이 존재했으리라. 솥이며 단지며, 그가 사용했던 사냥용구며, 가재도구, 전쟁무기, 장식용품 등을 세세히 드려다 보았다.

칼의 고리에 장식된 봉황과 새싹문양.
칼의 고리에 장식된 봉황과 새싹문양.

 케이팝데몬헌터스가 한류 문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면서 음악과 춤을 넘어 그들이 거닐었던 장면과 그들이 입던 의상과 즐겨먹던 모든 것들이 아이콘이 되고 상품이 되어 소비되는 현실을 박물관의 유물 안에서 톺아보고자 하는 욕구까지 나를 따라 온 것이다. 칼의 손잡이에 장식된 새싹문양이라든가 봉황문양이 더 환하게 보이는 것들이 그 탓이고, 동국팔도대총도라는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지도 안에 금강 아래 계룡산이 있고, 전라도라고 표시하고 그 옆에 금성산이 있으며 그 아래 남해라고 새겨지고 육지가 끝나며 제주에는 한라산이 드러난 것을 연신 바라보는 것도 그런 연유다.

 남해신사로 이어지는 신화의 지도

 이곳이 남해이니 당연히 남해 바다 용왕님을 모시는 신전인 남해신사가 있고, 서해에는 서해신사, 동해에는 동해신사가 있는 것이 지당하다. 영암 시종면에 남해포가 있고 남해신사가 위치하며, 매해 향사를 하는 이유가 지도속으로 들어가 앉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박물관이 지닌 엄숙함이나 경건성이 나주박물관에서는 반감되었다. 둘러보는 내내 나는 유적과 대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시의 공간은 입체적이었고, 때론 밀집도가 있는 것도 있지만 이것은 유물을 한데 보여줌으로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는 노력으로 보여졌다. 거기에 기획전시장으로 옮겨진 것들이 제법 드러나는데, 기획전시의 주제 “흙으로 만든 널, 고요한 위엄 고대 영산강 유역 사람의 마음을 담다” 를 더욱 부각하기 위함이란게 기획전시실에서 체감되었다.

갈판과 화살촉이 있는 전시실.
갈판과 화살촉이 있는 전시실.

 전시는 세개 영역으로 나눠졌는데, 독널로 하나된 사회와 독자적인 독널무덤 조성, 공유된 독널 매장 풍습으로 이어졌다. 아직은 모계중심의 사회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무덤 이런 독널이 발생한 것을 4세기 전으로 상재하며 5세기 무렵 대형독널이 등장하고 후반에는 대형무덤 양식으로 전개됨은 한 사회가 장례를 통해 강하게 결속되었음을 상징화 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렴풋이 고등학교때 국립광주박물관에 들어가면 이 거대한 옹관과 마주할 때의 공포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아직 더 커야할 시간이라서 죽음과 그것을 담아낸 관 이라는 사실이 힘겨웠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그냥 어디서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가 되어가는 지라 대부분의 유물이 무덤에서 나온 걸로 채워져 있지만 망자와의 대화도, 이것을 이렇게 배치한 분들의 의도 같은 것들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처럼 자신이 있어진다. 게다가 가을이지 않은가? 생각은 채우려 하고, 몸은 비워내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지만 늘 몸은 채워지고 마음은 공허하기만 하는 계절이기에 이 뒤죽박죽의 인생의 무심함을 여행으로 달래 보는 것이다.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 황혼이 찾아온다.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 황혼이 찾아온다.

 이제 본격화된 가을 스스로를 내려 놓고 하늘에 따라가는 죽은자들의 이야기가 살아 돌아와 대한민국의 국호를 만들어낸 마한의 유적을 한번 밟아보면 좋지 아니한가 권하고 싶다. 나주박물관의 기획전시는 내년 3월 15일까지 이어지고, 마한역사문화공원에서 이뤄지는 마한역사문화제는 11월 14일과 15일 “다시 뛰는 마한의 심장”이란 주제로 열린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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