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끝의 아름다움’(2021 소원나무)
삶도, 사랑도, 이야기도, 책도, 시작하면 끝난다. 끝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과도 같은데,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왜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지, 왜 이야기가 완결되어야 하는지 말이다.
이러한 의문들을 다정하고 상냥하게 풀어낸 책이 바로 ‘끝의 아름다움’(2021, 소원나무)이다.
알프레도 코렐라가 글을 쓰고 호르헤 곤살레스가 그림을 그린 이 책은 어제 막 100살이 된 거북이 ‘니나’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지난 100년간 수많은 여행을 해온 ‘니나’는 이제 자신의 여행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끝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니나’는 마지막으로 끝을 이해하기 위한 여행에 나서기로 한다.
니나가 개미에게 물었습니다.
“개미야, 너는 끝이 무엇인지 아니?”
“끝? 끝은 나쁜 거지! 가을 내내 모아둔 먹이가
다 떨어져 겨울을 날 수 없다는 뜻이니까.”
(…)
“애벌레야, 너는? 너한테도 끝은 나쁜 거니?”
“아니, 끝은 내가 평생 기다려 온 순간이야.”
애벌레가 꽃 주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니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끝의 아름다움’ 중에서.
‘니나’는 길을 가면서 마주치는 모두에게 끝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제비는 끝이 “방향을 바꿔야 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대답하고, 뱀은 자기 몸으로 모래 위에 원을 여럿 그린 뒤 “끝이 어디인지 알겠”느냐고 묻는다. 꾀꼬리는 “노래가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니나는 걸음을 멈추고 목을 축였습니다.
끝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니나가 강물에게 물었습니다.
“강물아, 너는 끝이 무엇인지 아니?”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고 생각해.”
“그건 나쁜 거야?”
“가끔은. 하지만 끝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야. 가령 나를 봐.
나는 바다에서 끝나지.”
‘끝의 아름다움’ 중에서.
강은 바다에서 끝나고, ‘니나’의 여정도 이내 끝이 난다. 우리도 끝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겠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 ‘니나’는 이 책의 글을 쓴 알프레도 코렐라의 열 살배기 딸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알프레도 코렐라는 딸 니나에게 끝에 대해 설명해주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리고 그 설명의 와중, 모래 위에 뱀이 그린 원을 보고 시작과 끝이 명확치 않은 순간에 대해서도 논했다는 것이야말로 주목할 만 하다.
끝은 무언가의 종말을, 이별을 의미한다. 어느 순간 이후 있었던 것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 익숙하던 것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게 된다는 것,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영원히 변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랬을 때 이 끝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니나’의 여행에서 많은 존재들은 말한다. 끝이 나지 않으면 시작도 없기 때문이라고. 강은 끝나면 바다가 되고, 노래는 끝나면 새로운 노래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개미의 끝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순간이지만, 애벌레의 끝은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밖, 앞면과 뒷면의 구별이 없고 좌우의 방향을 정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렇기에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고, 끝없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일컬을 때 자주 사용되고는 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삶이 어느 순간 시작되었고 끝나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삶 바깥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알 수 있겠지만, 그리고 현실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낸다면 색종이 이어붙인 자리를 볼 수 있겠지만, 끝을 기다리는 우리와 뫼비우스의 띠 위를 달리는 누군가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끝이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냉정하고 잔인한 종결에 집중하기보다 무언가가 계속될 거라는 기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 안 되는 형태라고 할지라도 끝없이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우리로 하여금 끝을 너무 끔찍하기만 한 것으로 보지 않게 돕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우리는 마침내, 끝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