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85) 천 년의 생명, 붉은 보석 품은 주목
나무 심재와 가을 열매 붉은빛 뜻해

주목.
주목.

 세상의 모든 빛깔이 사그라드는 깊은 가을을 지나 이제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을 한겨울. 우리는 한라산이나 지리산의 능선, 혹은 오래된 사찰의 뜨락에서 시간을 초월한 듯한 숭고한 생명과 마주한다. 모든 것이 잠든 잿빛 풍경 속, 유독 짙푸른 생기를 뿜어내는 잎과 그 위에 보석처럼 박힌 선명한 붉은 열매. 이 강렬한 대비의 주인공이 바로 ‘주목(朱木)’이다. 주목은 화려한 향기 대신 묵묵한 존재감으로, 혹독한 계절을 견뎌내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숭고함을 간직한다. 이런 아름다운 주목을 산 정상부에서 만나면 왠지 가슴이 뜨거워진다.

 주목(朱木)이라는 이름은 그 특징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주(朱)’는 나무의 심재(心材)와 가을에 익는 열매의 붉은빛을 뜻한다. ‘목(木)’은 나무임을 의미한다. 이 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 더디게 자란다. 하지만 한번 자리를 잡으면 천 년을 살고, 죽어서도 그 줄기가 천 년을 썩지 않는다. 그리하여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학명은 탁수스 쿠스피다타(Taxus cuspidata)이다. 속명 탁수스(Taxus)는 라틴어로 ‘주목’을 뜻한다. 이는 활을 만드는 데 쓰인다는 그리스어 ‘톡손(toxon)’이나 나무의 독성을 뜻하는 ‘탁신(taxin)’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종소명 쿠스피다타(cuspidata)는 ‘뾰족한 끝’을 의미하며, 이는 주목 잎의 뾰족한 모습을 묘사한다.

주목.
주목.

 주목의 생태적 특징은 뚜렷하다. 주목목 주목과에 속하는 상록성 겉씨식물이다. 해발 700m 이상의 높은 산지 능선 및 사면에 나는 침엽 큰키나무로 높이 17~20m, 지름 1.5m 정도로 자란다. 가지는 옆으로 퍼져 원뿔 모양의 수형을 이룬다. 나무 껍질은 적갈색으로 얕게 갈라지고 띠처럼 벗겨진다. 잎은 나선 형태로 달리며,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는 우상(羽狀)으로 2줄로 배열한다. 잎몸은 뾰족하고 앞면은 짙은 녹색, 뒷면은 2개의 연한 노란색 줄이 있다. 암수딴그루이며 암꽃은 4월에 달린다. 수꽃은 6개의 비늘조각으로 싸여 가지 아래쪽에 9~10개가 황색으로 달리며, 암꽃은 10개의 비늘조각에 싸여 있으며 녹색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며, 러시아 동부, 일본, 중국 동북부 등에도 분포한다.

 주목의 백미는 8~9월에 적색으로 익는 열매다. 종자는 삼각상 난형 또는 난상 구형이며, 컵 모양의 붉은색 열매살(가종피)에 싸여 있다. 이 붉은 과육은 달콤하여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붉은 과육을 제외한 씨앗과 잎, 가지에는 ‘탁신(taxine)’이라는 맹독이 들어있다. 아름다운 모습 속에 치명적인 경고를 함께 품고 있는 것이다.

주목.
주목.

 주목의 진가는 그 장구한 생명력과 쓰임새에 있다. 정원수나 공원수로도 심지만, 더디게 자란 만큼 목질이 단단하고 붉은빛이 고우며 잘 썩지 않아 그 목재가 특히 귀하다. 예로부터 왕의 관(棺)이나 최고급 가구재, 활을 비롯한 건축재, 기구재, 조각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서양에서는 특히 영국군의 강력한 장궁(Longbow)을 만드는 재료로 쓰여 ‘죽음을 부르는 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과학은 이 ‘죽음의 나무’에서 ‘생명의 약’을 찾아낸다. 1960년대, 태평양 주목의 껍질에서 ‘파클리탁셀(Paclitaxel)’, 상품명 ‘탁솔(Taxol)’이라는 강력한 항암 성분이 발견된 것이다. 치명적인 독을 품은 나무가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가장 무서운 질병인 암과 싸우는 핵심 무기가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주목은 불굴의 의지와 장수, 고고한 기품의 상징이다. 혹독한 고산지대의 눈보라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모습은 시련을 견뎌내는 굳건한 선비의 절개를 닮았다. 한국의 사찰과 왕릉(대표적으로 조선 세종대왕의 영릉)에 주목을 즐겨 심은 이유다. 이는 그 영원불멸의 생명력으로 망자의 안식과 왕실의 영속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서양 문화권에서도 주목은 죽음과 동시에 부활, 즉 영생을 상징하며 묘지에 즐겨 심는 나무였다.

주목.
주목.

 하지만 수천 년 세월을 견뎌온 이 숭고한 나무가 지금,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 서 있다. 전통적으로 주목은 서늘한 고산지대나 한대 기후를 대표하는 수종이다. 온난화로 인해 북쪽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여느 상록수와는 정반대의 처지다. 주목은 지구가 더워질수록 살 곳을 잃어간다. 더 서늘한 곳을 찾아 산 정상으로, 더 북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한반도의 가장 높은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이들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제 주목은 단순한 장수의 상징을 넘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가장 절박하게 증언하는 ‘살아있는 지표‘가 되었다. 만약 삭막한 겨울 산에서 주목의 짙푸른 잎과 붉은 열매를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숭고한 생명력을 깊이 느껴보길 권한다. 그 속에는 수천 년을 버텨온 장구한 시간의 무게와 더불어, 우리 미래 세대에게 자신의 터전을 지켜달라는 고대 생명체의 간절한 메시지가 함께 담겨 있다.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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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리아생태연구소 부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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