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경사로 휠체어·유모차 이용객 접근 장벽
작품 설명 작은 글씨·점자 미비 ‘포용’ 못한 디자인
비엔날레 측 “건물 노후화, 현실적 극복 어렵다”
‘포용디자인(Inclusive Design)’을 내세운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2일 막을 내렸다. 지난 8월 30일 개막해 65일간 이어진 이번 전시는 ‘너라는 세계: 디자인은 어떻게 인간을 끌어안는가’를 주제로, 인간과 디자인의 관계를 다시 묻는 자리였다.
비엔날레 전시장에는 폐막일에도 관람객이 몰렸다. 다음 비엔날레는 2027년에나 다시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세계·삶·모빌리티·미래’ 등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시는, 디자인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꾸미거나 기능을 개선하는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조건과 차이를 가진 존재를 이해하고 품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들이 전시됐다. 장애, 연령, 성별, 감각 차이를 넘어서는 접근 방식이 담긴 생활용품과 교통수단,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 등은 ‘디자인이 곧 관계 맺기의 기술’임을 일깨웠다. 그러나 전시가 전하려던 메시지와 달리, 실제 전시 환경은 포용의 완성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번 비엔날레는 장애 관련 콘텐츠가 다수 포함된 만큼, 장애인 관람객들의 방문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전시장 환경은 아이러니하게도 ‘포용’과 거리가 멀었다.
비엔날레관을 연결하는 경사로는 휠체어 이용객에게는 ‘장벽’이었다. 본보는 폐막일인 2일 직접 휠체어를 타고 경사로를 오르려 했지만, 바퀴가 뒤로 밀려 중심을 잃을 뻔한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 결국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서야 이동이 가능했다. 만약 혼자 방문한 장애인이었다면 관람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휠체어를 탑승하고 온 노부부 관람객은 “전시를 보러 왔다가 땀만 흘리고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휠체어를 미는 일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휠체어 이용자 김민주(28) 씨는 “엘리베이터 이용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며 “포용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경사로가 이렇게 가팔라서 이동에 불편을 준다는 것이 너무 역설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불편은 장애인뿐 아니라 유모차를 끌고 온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전시장 내부 벽면에는 “우리 도시는 모든 사람에게 이동의 권리를 제공하고 있는가?”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지만, 그 문장은 현실과 가장 멀리 있는 질문이 됐다.
문제는 이동권만이 아니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관람객들에게는 ‘작은 글씨’가 또 다른 장벽이었다. 작품 설명문 대부분이 작은 폰트로 적혀 있어, 노년층 관람객이나 저시력자는 내용을 거의 읽을 수 없었다. 일부는 휴대폰 카메라 확대 기능을 켜서 겨우 내용을 확인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관계자는 “예술비엔날레 당시에 캡션(작품 설명)이 너무 커버리면 작품이 죽어버리니까 밸런스를 맞추는 과정들이 있었다”며 “이번 디자인비엔날레에서도 적당한 크기라고 생각해서 제작하고 보니 구현이 그렇게 됐다. 다음에는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도 충분치 않았다. 일부 구간에만 ‘큰 글자판’이 설치됐지만 작품을 직접 관람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또 전시관을 이동하는 통로마다 유명인들의 포용 디자인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지만 점자 안내도 없어 비장애인 위주의 작품 전시가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비엔날레 관계자는 “전시관에 큰 글자판이 놓여져는 있지만 설치되지 않은 부분은 점자를 제작하는 업체가 국내에 많이 없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며 “예술 비엔날레랑 다르게 전시관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예산이다. 주제에 맞게끔 부가적인 것들이 따라붙어야 했음에도 물리적, 시간적, 예산적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포용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지역사회에 본격적으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고, 단순히 장애인 편의시설의 문제를 넘어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다수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포용디자인을 주제로 한 전시였던 만큼 물리적 제약을 없앨 더 많은 고민을 해야했다는 지적도 더해진다.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장애인들에게 경사로는 ‘네가 감당할 수 있으면 들어오고, 아니면 포기해라’라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진다. 입장은 허용하지만 평등은 보장하지 않는다”며 “이번 전시는 사회가 장애인을 어디까지 허용하는지 다시 확인했던 자리였다. 포용디자인을 외쳤지만 장애인은 결국 참으라는 존재로만 여겨졌다”고 지적했다.
디자인비엔날레 관계자는 “장애단체에서도 경사로(슬로프)를 이용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며 “이번 주제가 교통약자, 장애인, 비장애인을 다 품을 수 있는 주제였었지만 전시 편의성에 대한 것은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해서 준비하면서 극복이 될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이라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전경훈 기자 hu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