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영암 기찬랜드에 가을이 피다
영암 월출산 국화축제 산과 한옥, 국화 어우러져

국화도 가로수도 태양도 붉게 물들어가는 월출산의 가을.
국화도 가로수도 태양도 붉게 물들어가는 월출산의 가을.

 이른 아침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길을 나서기가 두려워진다. 차로 5분 거리임에도 차가워진 날씨에 더해 안개까지 가로막는데 짐짓 설레임 하나가 대문을 박차게 한다. 10시쯤이면 이불같은 장막은 거두워 질 것이고, 그러면 말끔한 등대 하나가 내 눈에 선연히 박힐 것이다. 일상적으로 내가 걷고 있는 지표면의 높이가 해수면으로부터 20미터 안팎인데, 해발 809m의 월출산 천황봉이 호수 같은 안개를 발아래 두고 돌올하게 얼굴을 내미는 장면이다.

옅은 운무속에 드러난 월출산의 실루엣.
옅은 운무속에 드러난 월출산의 실루엣.

 안개 속에서 맞이한 월출산의 아침

 그런 일상들이 월출산 아래 사는 개미진 일이다. 게다가 지난 10월 29일 부터는 기찬랜드 일원에 국화축제가 막을 올렸다. 작년은 이상기후로 인해 개화된 꽃들이 많지 않아 시작 무렵에 흥이 덜했는데 올해는 이미 이를 감지한 이상 그에 걸맞는 양육을 통해 개화율이 30% 정도에 이를만큼 철저하게 준비를 해 왔다. 모두 영암군 농업기술센터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재배 농가와 손발을 맞춰왔음에 대한 방증일 터이다. 영암읍 회문리 일원의 계곡과 평지를 영암에서는 기찬랜드라 부르고 있다. 일종의 유원시설이자 관광지로 일찌감치 자리잡은 곳이다. 전남권역의 20대나 30대의 청년들 대부분은 기찬랜드 물놀이장에서 여름 더위를 부모님과 함께 씻어냈던 추억의 장소이고, 지금도 어린이들이 즐겨찾는 계곡형 물놀이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변덕스러운 여름날 37일 중에 10일이나 비가 내렸음에도 5만 4000여 명이 물놀이장을 방문해 주셨더랬다. 여기에는 또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곤충박물관과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 얼핏 어린이만의 천국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볼만한 곳으로 조훈현바둑기념관과 가수 하춘화 선생이 기증한 다양한 음악 자료와 무대의상 등을 통해 트롯의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트롯트 가요센터도 있다.

마한의 심장 영암 글 뒤로 천황봉이 보인다.
마한의 심장 영암 글 뒤로 천황봉이 보인다.

 구한말 어지러운 나라 상황에서도 우리 가야금이 지닌 운율을 다시 정리하며 새로운 장르로서 가야금 산조를 내놓은 김창조 선생님을 기념하기 위한 김창조산조기념관도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 전통음악의 발전이 어떤 역사성을 지닌지 크게 관심 갖진 않지만 영암 사람들은 중국의 당악이 들어오고, 세종대왕이 아악을 정리하고, 판소리라는 한국적 장르의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가야금 산조가 창조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양악이 들어왔다는 것이 우리 음악사의 5대 축임을 거진 알고 있다.

 그곳에 300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매력한우로 유명한 영암의 축산업이 가진 노하우를 고스란히 맛으로 전달하는 매력한우 명품관이 있고, 영암에서 나는 산채며 약초를 이용한 닭고기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철판구이점이 있으며, 영암 한정식의 깊은 맛을 느끼는 기찬빌리지 한정식집도 있다. 게다가 숙박을 책임지는 한옥집인 기찬재게스트하우스와 기찬빌리지까지 있으니 놀면서 쉬면서 국화향에 무젖을 수 있고, 맛집에 체류까지 온통 이곳에서 소요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며칠전 농업기술센터의 팀장분들이 이 공간을 함께 사용하도록 힘을 모아주셨다고 멋진 국화분재를 두 개나 들고 오셨다. 구름같은 인파를 모셔오는 국화축제를 준비하는 분들인지라 차 한잔을 하며 메인 스테이지의 이면과 세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이번 축제가 영암에서는 19번째라고 한다.

국화축제를 만들어낸 농업기술센터직원들.
국화축제를 만들어낸 농업기술센터직원들.

 19번째 영암 국화축제, ‘기찬랜드’로 돌아오다

 처음에는 왕인박사 유적지에서 개최했는데, 경관은 아름답지만 체류와 소비를 유발할 수 있는 접점이 없어 8번째까지 그곳에서 하다 결국 2015년에는 영암읍내로 옮기었단다. 읍내가 모처럼 환하게 밝아지고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혼잡 요인의 발생과 더불어 국화를 전시하기에는 공간의 협소함이 더 멋진 경관을 연출하기에 버거웠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의 국화축제 공간인 기찬랜드로 옮겨와 이곳에서 열 번째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시 규모를 보니 국화의 종류가 총 23종에 달하고, 각각의 화분의 개수는 20만 여 점에 이르렀다. 이런 화분은 기술센터가 20여종 3만여점으로 조형물과 분재·모형 등을 제작하고, 화단국과 입국, 가든 멈 등 비교적 양육이 쉬운 3종 17만여점은 지역 농가가 위탁생산을 하는 구조라고 했다. 이렇게 생산하고 전시하고 다시 철수하는데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8억 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재배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디스플레이도 시대적 추이와 지역의 이슈를 담아내는지라 영암의 방문객 유입과 관광수익 증대 등에 기여도가 높아 보람을 느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 하신다.

국화축제의 입구인 마한문.
국화축제의 입구인 마한문.

 국화 20만 점, 향기로 엮은 지역경제의 활력

 기찬랜드로 들어오는 관문에 올해는 마한문이 웅장하게 들어섰다. 마한의 심장이라는 영암군의 슬로건이 반영된 작품이다. 딱 봐도 위엄이 보이는 그 문은 높이가 7m에 길이가 18m에 달하니 모두들 그 앞에서 사진 찍느라 진풍경이 펼쳐진다. 다시 안으로 들어서면 한우경진대회에서 3번이나 우승해서 대통령상을 받은 고을답게 박력있는 한우가 국화로 수놓아진 형태로 월출산을 향해 돌진하는 조형물이 있다.

 곧이어 아치 터널 곁에는 영암의 대표적인 농특산물 중 여섯가지가 탐스럽게 펼쳐진다. 영암배, 멜론, 대봉감, 달마지쌀, 고구마, 무화과가 국화와 억새로 울이 쳐진 가운데 광주리에 담겨있는 모습이다. 지방시대라고 하지만 지방의 위기 앞에서 견뎌낼 장사없다. 모두들, 중심지라는 서울로 향하고 그곳에는 잉여와 과잉으로 점철되는데, 지역에는 젊은이들이나 어린이들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 논밭에도 대불산단이나 삼호조선소에서도 외국인 주민이나 이주 노동자, 계절 이주 노동자가 없다면 이 나라의 농업이나 뿌리산업은 근본도 없이 무너질 기세다. 그런 와중에도 살아내야 하고, 견뎌내야 하고, 지속해야 하는 것이니 그 몸부림이 이런 조형물에도, 축제에도 모두 드러내려 한 것이다.

국화가 황소가 되었다.
국화가 황소가 되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런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애써서 재배하고 나누려는 이들의 마음을 털끝만치라도 안다면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제 터널로 들어가면 국화향에 파묻힐 수 있다. 코끝에 찡하게 와 닿는 내음에는 약간의 짭조름한 내음이 가을의 건조함과 함께 묻어난다. 최근에 “찰나의 기억, 냄새”라는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이 스쳐간다. 그와 대비되는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한 시대가 들어오는 듯한 식당”이라고 표현한 박찬일 세프의 글과 묘하게 엉기는 듯한 질감이 느껴지는 터널 걷기다. 터널은 중간중간 다른 길로 나가길 권한다. 옆으로 가야금 산조기념관으로 가면 국화 분재가 장엄한 형태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국화분재 전시장 전경.
국화분재 전시장 전경.

 국화터널, 향기 속에서 걷는 사색의 길

 도연명이 ‘귀거래사’에서 소나무와 국화의 꿋꿋함을 예찬한 그 연유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하니 주돈이가 도연명이 유독 국화를 좋아했던 이유를 국화가 숨어사는 꽃이니 그의 생애와 동격이어서 그러하다는 것을 애련설에서 또 밝혀주고 있다. 은자의 기품이 가득한 국화 분재와 마주하면 먼저 이것을 키운 사람의 노고에 감탄하고, 휘어짐과 꼿꼿함의 간극 사이에서 어떻게 고뇌하고 형태를 잡았을 것인지에 대해 감사하고, 올 여름 그 혹독한 더위와 끝이 없었을 것 같은 열대야에서도 이 시간에 꽃피우게 만들어준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만개한 용담.
만개한 용담.

 여느 해 같으면 국화의 순따기를 8월 말쯤에 하면 되는데, 올해는 20여일 빠른 8월초에 시행함으로서 개화시기를 맞췄다는 것도 알아 두면 좋겠다. 분재를 보고 담너머의 기찬재 게스트하우스의 뜨락에 가면 영암의 도시농업연구회원들이 준비한 야생화 전시가 이어진다. 지천에 흔한 것 같은 야생화도 이제는 쉽게 접하기 힘들어진 시대다. 몰라서 못 보고, 바빠서 못 만나고, 무관심에 지나치는 그런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웅담보다 더 귀한 약재라는 용담이 쪽빛으로 피어났고, 돌배나무며, 애기사과, 수사해당화 같은 나무의 열매들이 잘 익어가며 무르익는 가을임을 실감 나게 한다. 이제 밖으로 나오면 고려때 천체전문가인 영암사람 최지몽이 개성에 세웠다는 첨성대 조형물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시큼한 애기사과.
보기만 해도 시큼한 애기사과.

 가을이 완성되는 여정의 끝, 구림마을 한옥비엔날레까지

 조형물 하나하나에 역사를 담고, 상징을 담고, 산물을 담아내고자 하는 아이디어들이 빛나는 것은 계곡 건너에 민속씨름의 강자 영암씨름단을 풍자한 조형물, 마한 유적의 대표라 할 옹관에서 쏟아지는 국화로 꽃사태를, 다양한 갈대로 포토존을 만들고, 월출산 하늘아래 첫 부처인 마애여래좌상을 이곳으로 소환한 듯한 조각품이 국화에 둘러 쌓인 광경 등 하나하나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국화꽃들이 기찬랜드를 빛내고 있다.

옹관에서 국화를 토해내고 있다.
옹관에서 국화를 토해내고 있다.

 다가오는 주말, 푸른 하늘과 우뚝 솟은 월출산과 그 발치의 운무와 영암평야의 논마다 심드렁하게 누워있는 공룡알, 혹은 마시멜로라 부르는 곤포사일리지가 있는 풍경도 눈에 담고, 마침내 기찬랜드에 도착하면 좋겠다. 꽃 멀미가 날 정도의 국화가 여러분을 가을속으로 초대할 터이니 말이다. 참. 가까이 호남 3대 명촌 구림마을에서는 한옥비엔날레도 열리고 있으니 거기까지 관람하시면 2025년 가을 하루가 완벽할 것이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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