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 이성에게 원하는 이상향이 고양이상에 가깝다. 눈 크고 해 맑고 얼굴 작고 시크하고 등등. 그래서 고양이들은 개처럼 집을 수고롭게 안 지켜도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나다니면서 사람의 돌봄을 유도할 수 있는 천부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마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생긴 게 아니라 자연이 원해서 그렇게 생긴 건데 우연히 인간의 감성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지독히도 운 좋은 축에 속하는 동물인 것이다.

　‘너희들 관심 따윈 우린 아무 상관 안 해!’ 그런 천부적인 능력을 증명하는 녀석이 바로 집고양이나 길고양이와 또 다른 야생고양이들이다. 그중에 세계의 지붕, 바람의 고향이라는 파미르나 티베트 고원 같은 춥고 황량한 곳에 사는 찐 야생고양이가 있다. 그들을 처음 본 사람은 아마도 이런 위험한 곳에 두지 않고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름도 그럴듯한 마눌고양이(몽골어로 야생고양이)이다. 영어 명칭은 팔라스 고양이이다.

　일본 우에노 동물원에서 딱 한 번 실체를 슬쩍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동물원이나 집에 묶이기에는 너무 자유분방한 녀석들이다. 그런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쥐나 토끼를 날카롭게 사냥하는 걸 보면 참 참 미스 매치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나름대로 그런 아름다운 황무지에서 잘 살아가고 살아남았다.

　왜인진 모르지만, 고원의 동물들은 대개가 신비롭고 아름답다. 마못, 피카, 설표, 티베트 여우, 스라소니 등 다들 이름값들을 할 만큼 명품 동물들이지만 그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이다. 마못이나 피카가 마눌고양이에게 먹히고 설표가 티베트 여우나 마눌고양이를 또 사냥한다.

　외모 따위는 사람에게나 중요하지,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쟤 예쁘네!’하고 감탄하는 순간 그들은 먹잇감이 되거나 멀리 도망쳐버린다. 동료들은 서로 외모가 중요하지만, 타종은 살점이 중요하지 피부는 그렇게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외모란 피부 한 장 차이일 뿐이다.

　마눌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에 비해 귀가 크지만, 얼굴 옆에 바짝 붙어있고 얼굴은 약간 눌린 호빵처럼 생겼다. 그들의 눈동자는 호랑이나 사람처럼 둥글다. 그래서 표정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세상에서 가장 표정이 풍부한 고양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그들은 놀랍게도 약 1500만 년 전에 출현한 야생고양이 중 가장 오래된 종이며 털이 길고 촘촘하고 눈동자 색이 다양한 터키시앙고라 고양이의 직접 조상이란 설도 있다. 그들의 납작한 귀와 얼굴은 매복을 잘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겨울에 최대한 노출을 줄이기 위함이 주목적이다.

　발이 시리면 꼬리 위에 두 앞발을 살포시 올려놓는 귀여운 짓을 하기도 한다. 크고 두툼한 그들의 꼬리는 그들의 작고 소중한 생존 이불인 셈이다. 마눌들은 무리 짓지 않고 혼자서 다닌다. 3마리 정도 새끼를 나고 그중 한 마리조차 1년 이상을 생존하기 어렵다. 어미는 그 생존한 새끼에게 자기 영역에 물려주고 조용히 떠난다. 고양이는 사냥하는 앞발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땅굴을 파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희생양들인 마못들이 파놓은 수많은 굴 중 하나를 임시 거처로 이용한다. 마치 전리품 같지만, 이것이야말로 ‘경쟁 속에 공생’ 그런 자연의 순환 고리라 할 수 있다. 경쟁은 최소한 생존을 위해서만 할 뿐 지구와 자연을 위해서라면 적에게라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자연이고 초원이고 정글이다. 그래서 정글의 법칙은 늘 처연하지만 아름답다.

　최종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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