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수사·재판, 구형보다 높은 형 선고…몰수 추징 가능"
檢 반발엔 "尹 석방 때 반박했나…개혁에 책임 있는 자세 가지길"
檢내부는 반발 확산…초임검사 "장관·대검 수뇌부 사퇴해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0일 대장동 개발비리 항소 포기 논란과 관련해 "항소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대검찰청 보고를 받았을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하다. 사건 관련해 원론적 말씀을 드리면 성공한 수사·재판이라고 생각한다"며 "법리적 해석 차이는 약간 있지만 전체적으로 수사 결과에 법원은 제대로 판단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항소 제기 시한이었던 지난 8일 오전 0시까지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조형우)에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대검 수뇌부가 법무부의 의견을 듣고 불허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은 물론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하는 등 검찰 내부의 반발이 이어지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 장관은 "맨 처음 통상적인 수준에서 보고받아 '상당히 중형이 나왔다,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정도 표현을 했다"며 "이후 대검의 '항소 필요성이 있다'는 두 번째 보고를 받았을 때 '신중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고가 구형보다 높게 나왔고 법리적 측면에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7일(항소 제기 시한 전날) 오후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일정으로 정신이 없었다"며 "일선 부서에서 항소하려 한다고 했을 때 '종합적으로 판단하라',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표현했다"고 밝혔다.
또 해당 의견을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에게 직접 전달했는지를 묻는 말엔 "취임 이래 사건 관련 노 대행과 통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부당이득액으로 추산했던 7000억 원대 국고 환수가 어렵게 됐다는 지적에도 적극 반박했다.
정 장관은 "몰수 추징은 피해자가 없는 경우에 국가가 대신하는 것으로 2000억 원은 이미 몰수 보전이 됐다"며 "이 사건 피해자인 성남도시공사는 민사 소송을 진행 중으로 7000억 원을 받지 못한다는 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어 "개발 행위에 따른 전체 수익이 7000억 원으로 정당한 수익을 넘어 뇌물 등으로 발생한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확정되지 않았다"며 "민사 소송에서 입증되고 범위가 명확히 판단되면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연관성에 대해선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인가"라며 "별도로 기소돼 재판을 진행하다 중단됐고, 성남시 공무원도 따로 재판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재판은 분명히 대통령과 관련해 어떤 판결 이유에도 설시한 바가 없다"며 "오히려 대통령을 고려했다면 다른 의견도 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검찰 내부의 반발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와 석방,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검찰 자살' 표현을 인용하며 적극 반박했다.
정 장관은 "중앙지검장과 검사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며 "국민이 기대하는 검찰 개혁을 위해 보다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런 정치적인 사건 때문에 검찰이 이 사건에 매달리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사건에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며 "한 전 대표가 '검찰 자살'이라고 하는데 법무부 장관 출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라고 직격했다.
정 장관은 "내란 수괴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취소, 석방하는 데 검찰은 어떻게 했는가"라며 "일선 검사가 반박했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도 안 되는 극소수의 정치 검사들이 눈치를 보고 수사해 왔기 때문에 국민 불신이 나온 것"이라며 "대부분 검사는 민생 안전,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사권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앞으로 우리 검찰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면서 차분하게 맡겨진 일을 다하는 게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 등 검찰 내부에서 의사 결정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 등 대검 수뇌부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장동 사건 공소유지 실무책임자인 박경택 서울중앙지검 공판5부장검사는 전날 오후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항소 포기 과정을 설명하며 "의사결정에 관여한 사람들과 역할이 명확하게 확인되길 바라며 그에 따라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이 타당한 것인지 논의돼야 한다"고 썼다.
박 부장검사는 "항소여부에 대한 판단 과정에서 그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은 저도 충분히 인정하며, 그것이 대검 지휘부 판단이라면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적어도 대검이 중앙지검과 판단이 다르다면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하며 왜 그러한 판단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어 적어도 중앙지검에서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항소포기에 대한 판단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으나 이에 대한 대검의 승인절차에서 있었던 과정들은 과연 공판검사들이 그토록 고민하고 야근을 해가며 작성했던 항소 근거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묵살해버릴 수 있는지, 이것이 정말 검찰 의사결정과정의 현주소인지, 어떤 가치를 위해 이와 같은 지시를 내리는지 계속하여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영석 대검 감찰1과 검사는 같은 날 이프로스에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며 입장을 개진했다.
김 검사는 "1심 재판부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 관련 대법원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면서 유사사례의 법리만을 토대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추징을 하지 않았다"며 "항소 포기로 김만배, 정영학, 남욱 등 대장동 민간업자는 수천억 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그대로 향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의 중요한 쟁점에 대한 상급심 판단을 받아볼 기회조차 잃었다"고 썼다.
검찰은 1심에서 대장동 민간업자가 7886억 원의 불법 이득을 취했다며 전액 추징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473억 원만을 추징했다. 정확한 액수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초임검사인 천영환 울산지검 검사도 "수사검사와 공판검사의 항소제기라는 만장일치 결정에 법무부와 대검이 반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글을 남겼다.
천 검사는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의 공범인 정진상, 김용에 대한 특별면회를 간 사실이 있음을 기사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법무부와 대검이 이해충돌의 비판을 감수하고도 대장동 사건 항소제기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이냐"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에 대해 배임적 행위를 한 법무부 장관과 대검 수뇌부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남겼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일선에서 지휘한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자 5명에 대한 1심 판결 항소 필요성'이라는 글을 올리며 천문학적 금액의 범죄수익 환수가 불가능하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강 검사는 "이번 사태로 남욱, 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되었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루어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며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도저히 항소를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강 검사는 "1심 재판부의 법률적 판단 오류를 시정하며 추징보전해둔 수천억 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환수하고자 하였으나, 항소 포기로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됨은 물론 범죄수익 환수라는 정의실현의 또 다른 축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김대원 기자 kdw34000@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