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당국자 “자유경제시장서 승용차 억제 못한다” 인식
시내버스 준공영제 적자 보전 현실…“시장 경제 자가당착”
전문가들 “승용차 수요관리 없이 대자보 전환 불가능” 지적
광주시가 대자보(대중교통·자전거·보행) 도시로의 전환을 내세워 왔지만, 정책의 핵심 열쇠인 승용차 수요 관리를 두고 시 내부에서 상반된 신호가 나온다. 광주시 교통정책 핵심 간부가 “자유경제시장에서 승용차 억제정책을 펼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대자보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승용차 억제하는 정책 없이 시민 2명 중 1명이 승용차를 끌고 다니는 도시 탈피가 쉽지 않아서다.
김영선 광주시 통합교통국장은 11일 본보와 통화에서 “자유경제 시장 안에서 승용차를 억제한다는 것은 안되는 일이다”며 “가급적 대자보를 이용해달라거나 이왕이면 전기차를 사달라 수준에 머무는 거다. 우리가 어떤 것들을 강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인센티브 안들이 더 보완이 돼서 제시가 돼야한다. 강압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니다”며 “공산구의 국가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촘촘히 더 준비해서 제시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 국장의 발언은 강제 규제에 대한 시민 반발을 우려, 저항감을 줄여야 한다는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책 목표(대자보 전환)와 정책 수단(승용차 수요관리)이 분리될 경우, 대중교통 인프라 확충만으로는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 어렵다는 것이 국내외 도시의 보편적 경험이다.
대자보 정책은 본질적으로 상대적 선택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버스·지하철·자전거·보행의 시간·비용·편의가 ‘자동차 대비 덜 불편’해져야 수송 분담이 이동한다. 이때 가장 강력한 축은 자동차 이용의 외부비용을 내부화하는 수요 관리다. 주차요금 현실화, 도심 통행속도 관리, 전용차로 확대, 신호우선, 도심 혼잡구역 관리 등이 대표적인 승용차 억제 정책이다.
광주는 매년 준공영제 손실 보전에 1400억 원에 이르는 재정을 투입한다. 또한 보행환경 개선, 자전거 도로 정비 등 공급 측면의 인프라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민의 일상적 선택에서 자동차는 여전히 더 빠르고 확실한 수단으로 남아 있다.
이는 공급 확대만으로 상대가격(시간·공간 비용)과 경쟁 조건이 바뀌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저가·무상에 가까운 주차, 차로 중심의 도로 설계, 느린 버스 회차·환승 동선, 불규칙 배차는 ‘자동차 우위의 기본값’을 공고하게 만들어왔다. 결과적으로 대자보 투자 성과는 수요 관리의 빈칸만큼 누수된다. 특히 광주시의 모든 대자보 정책이 도시철도 2호선에 초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 1단계 개통이 2028년초까지 연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교통 정책 전반을 흔들고 있다.
2017년 이후 처음으로 개편하려고 했던 시내버스 용역이 최근 재개됐다가 다시 중단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대자보 정책이 전면적으로 흔들리는 상황 속 인프라 확장만 기다리는 사이 대자보 도시는 선언적 구호에 그치고 있다. 특히 국가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에 승용차 억제 정책 없이 광주 전체 배출량의 30%를 차지하는 온실가스를 60.2~62.8% 감축은 불가능한 일이다.
대중교통 인프라 없이 승용차 억제만을 주장하는 것은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기만 할 것이라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인프라 확충만으로 대자보 도시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여전하다. ‘강제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논리는 빈약하다.
일회용품 정책에 비유해보면 사회는 ‘텀블러를 쓰자’는 캠페인에 더해, 사용 제한을 함께 도입해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말자라는 선언과 홍보만으로는 소비 행태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도 비슷하다. ‘버스를 이용해달라’, ‘자전거를 타달라’는 캠페인만으로는 승용차 이용의 구조적 우위를 뒤집을 수 없다. 지난해 광주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가 대자보 관련 여론조사를 한 결과 시민 64.4%가 복합쇼핑몰 이용 시 승용차를 이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일대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간선급행버스(BRT·Bus Rapid Transit), 광천상무선까지 추진하고 있지만 인프라 확충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자유경제시장에 맡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필순 광주시의원은 “시내버스도 자본주의다. 기업들이 알아서 하도록 둬야하는데 준공영제를 왜 하냐?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정책 실행력이 없는 것이다. 지하철 상부 개방을 하면서 도시계획, 교통, 건설 부서들이 자전거도로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12월 22일까지 계산해서 해야하는데 오직 덮는 것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시민들에게 보여줄 것만 하다보니 대자보는 없고, 자가용들이 잘 다니게 해주는 것만 하고 있는 행정의 난맥상으로 가고 있다”며 “시민들에게는 대자보 도시가 별로 좋지 않은 정책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희철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장은 정책 언어의 전환을 제안했다. 윤 센터장은 “대중교통을 강하게 추진하려면 빅푸시(big push)가 있어야 한다. 강력하게 한 번에 견일할 정책이 필요한데 무조건 자동차를 못다니게 한다고 하면 반발이 심하니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대자보로 이동하는 게 좋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옥스퍼드 등은 15분 도시 구현을 위해 생활권을 나누고 통행을 관리하는데 처음엔 반발이 있지만 설득으로 시민들에게 정책 효능감을 느끼게 했다”고 밝혔다.
승용차 억제 정책 없이 대자보 도시로 전환은 불가능하지만 전제는 대중교통이 승용차보다 더 빠르고 편리한 도시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승용차 억제 없이는 대자보 도시 전환이 가능하지 않지만 승용차를 먼저 불편하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며 “광주가 대자보도시를 전면에 내세웠으니 가장 먼저 할 일은 시민들이 대자보가 자가용보다 유리하고 편리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강요 없이 스스로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경훈 기자 hu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