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968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68년은 세계 역사의 축이 크게 흔들린 해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프랑스였다. 1968년 3월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파리 사무실을 습격한 대학생 8명이 체포되었다. 이에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규모 항의시위가 있었다. 여기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가세하면서 기존의 사회질서에 강력하게 항거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름하여 68혁명이었다. 68혁명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새로운 가치관과 사상으로 바꾸자는 운동이었다. 이 뜻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미국과 독일로 퍼져 나갔고, 일본의 전공투, 이탈리아의 총파업, 체코의 프라하의 봄, 폴란드의 소요 사태 등으로 그 운동이 확장되었다.

 독일에서도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는 68운동이 있었다. 독일 각지의 대학생들은 동독을 승인하고, 관료가 된 나치 부역자들을 처단하며,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었던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의 학생운동은 ‘긴급조치법’으로 지하 세력화되었고, 독일 적군파(RAF)를 탄생시켰다. 독일 적군파는 소수의 급진 좌파들이 결성했다. 창설 주역은 안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였다. 바더는 중산층 가정 출신의 직업운동가였고, 마인호프는 함부르크 좌익계 잡지에서 활약했던 여성 저널리스트였다. ‘바더 마인호프 그룹’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들은 ‘나치 잔재 척결’, ‘베트남전 반대’, ‘반제국주의 전쟁’ 등을 기치로 내걸고 폭력과 테러로 체제 전복을 꾀했다. 그리고 혁명의 이름으로 은행강도, 폭탄 테러, 납치 처단, 영리 목적 유괴를 감행했다.

 그렇게 1970년대 초 서독은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테러로 공포에 휩싸였고, 이들의 테러는 보수 우익 세력들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보수 우파 언론 권력인 ‘빌트’(Bild)지는 이들의 테러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이런 와중에 1971년 12월 23일 서독의 소도시에서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해 시민 한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한다. 이에 ‘빌트’지는 확인 절차나 증거도 없이, 이 사건을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바더 마인호프 그룹’을 악마화하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빌트’지는 바더 마인호프 일원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하노비 공대 패터 브뤼크너 교수를 날조된 기사로 매장하고자 했다. 브뤼크너 교수는 해직되었고, 명예는 실추되었다. 후에 브뤼크너 교수는 무혐의로 복직되었으나 오물을 뒤집어쓴 후였다. 이를 지켜본 하인리히 뵐은 피가 끓어 올랐다. 그리고 펜을 들어 소신 발언을 하게 된다.

 날조된 기사로 악마화…‘빌트지’ 횡포에 맞서다

 여기서 잠시 하인리히 뵐(1917~1985)이 어떤 인물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7년 쾰른에서 출생한 벨의 유년기는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한 시기였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크고 작은 정치 사회적 혼란이 끊이지 않았고, 뵐은 이 시기에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의 명멸과 히틀러의 제3제국의 준동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전선을 전전하며 네 번의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전장에서 돌아온 뵐은 전후 독일 사회가 빚어내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전후 서독은 소위 ‘라인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경제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사회적 불안과 인간성이 말살되는 상황이 대두된다. 이에 뵐은 인간성 회복을 외치며 글쓰기를 통해 앙가주망(사회적 참여)을 실천한다. 뵐은 서독의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작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이에 스웨덴의 한림원은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뵐의 ‘글쓰기와 행동의 일치’를 응원했다. 그러니까 뵐은 나치즘의 광기와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로서, 폐허가 된 조국의 ‘과거’를 직시하고, ‘현재’의 위선을 고발한 ‘독일의 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하인리히 뵐이고 보면, ‘빌트’지의 횡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리라. 그렇게 뵐은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에 반박 글을 기고한다. 뵐은 이 글에서 테러 자체는 비판했지만, <빌트>지가 ‘바더 마인호프 그룹’을 ‘괴물’로 낙인찍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글 하나로, 뵐은 순식간에 ‘테러리스트 동조자’, ‘좌파 빨갱이’로 몰매를 맞았고, 자택이 경찰에 수색당하는 수모까지 겪는다. 뵐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뵐은 1974년, 이 ‘마녀사냥’에 대한 문학적 복수를 감행한다. 바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탄생한 순간이다.

 우선 뵐은 소설의 본문으로 진입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여는 글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 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이 서두는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 낸 것’이지만, ‘<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한 대목은 <빌트>지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설 속의 신문 <차이퉁>은 <빌트>지와 겹친다.

 하인리히 뵐의 탁월한 승부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을 이혼한 스물 일곱의 가정부로 설정한 것에서 출발한다. 카타리나 블룸은 파티에 참석했다가 괴텐이라는 사람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춤을 춘 후, 카타리나의 아파트로 옮겨 하룻밤을 뜨겁게 보낸다. 다음 날 아침 괴텐이 쫓기는 몸임을 알게 되고, 카타리나는 비밀 통로를 통해 괴텐을 피신시킨다. 괴텐은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었고, 카타리나는 괴텐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연행된다. 그리고 이웃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찍힌 사진은 다음 날 <차이퉁>지의 자극적인 기사와 함께 1면 톱기사로 실린다. 경찰 조사를 받기 전이고,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차이퉁>지는 ‘공범’과 ‘내연녀’ 등의 용어를 써 가면서 범죄 연루를 기정사실화한다.

 <차이퉁>지의 카타리나에 대한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카타리나 주변인들과의 인터뷰를 왜곡하는 것은 기본이다. 카타리나를 가정부로 고용한 블로르나가 퇴트게스 기자에게 “카타리나는 영리하고 이성적”이라고 한 표현이 “얼음처럼 차고 계산적”이라는 말로 뒤바뀌는 식이다. 그리고 기자 퇴트게스가 카타리나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실까지 찾아가 카타리나와 관련해 악의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고, 결국 카타리나의 어머니가 사망한다. 이런데도 다음날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로 둔갑한다. “카타리나 블룸의 첫 번째 희생자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극도의 변태에 가깝다.” 이쯤 되면 <차이퉁>지는 신문이라고 할 수 없다.

 <차이퉁>지는 카타리나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어머니의 목숨도 앗아갔다. 그리고 황색 언론은 타락한 언어로 카타리나의 존엄을 짓밟았고, 날조 된 문장으로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렸다. 그렇다고 카타리나가 호소할 만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중들은 신문에 실린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지 않는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냐 싶은 태도로 기사를 소비하고, 심지어는 카타리나를 손가락질 한다.

 ‘타락의 언어’에 ‘소설의 언어’로 앙갚음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카타리나가 <차이퉁>지의 기자 퇴트게스와 인터뷰하겠다며 만나는 장면이다. 카타리나의 아파트를 방문한 퇴트게스는 ‘섹스나 한탕 하자’고 했고, 가까이 다가오자 퇴트게스의 몸속에 네 방의 총알을 심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부제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언론이 행사한 폭력은 결국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졌다. 카타리나는 언론의 비인간적인 횡포에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하인리히 뵐은 카타리나가 법이 아닌 물리적인 폭력으로 되갚는 이야기를 주도면밀하게 설계했고,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카타리나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독자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했다. 하인리히 뵐의 작가로서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194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전쟁의 참상과 전후 독일의 피폐한 사회상을 담아냈던 뵐은 “사람이 살 만한 나라에서 사람이 살 만한 언어를 찾는 일”을 전후 독일 문학의 중요한 과제로 보았다. 그런 점에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언어의 타락’에 대한 하인리히 뵐의 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차이퉁>지는 ‘사람이 살 만한 언어’ 대신에 ‘사람을 죽이는 언어’를 남발한 언론이다. 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실었고,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역시 자신이 ‘빌트’지로부터 공격받으면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이 각성이 있었기에 ‘언어의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중계했던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하인리히 뵐의 의도를 간파한 독자들로 인해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빌트’지는 정기적으로 발표했던 베스트셀러 목록을 신문에서 누락시켰다. ‘빌트’지의 이런 촌극을 독자들이 모를 리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하인리히 뵐이 이겼다. ‘타락의 언어’로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했던 ‘빌트’지에 ‘소설의 언어’로 앙갚음을 했다는 점에서 하인리히 뵐은 ‘작가’가 분명하다. 그렇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세상과 싸우는 것이다.

조대영.
조대영.

 조대영 (영화인)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