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청년들 ‘초단시간 노동’ 고통
노동 실태포럼서 실태 집중 조명
“손님이 없으니 오늘은 한 시간만 일하고 들어가라.”
광주의 한 초밥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효은(17) 씨는 근로계약서를 썼지만, 사장의 한마디에 근무시간이 수시로 바뀐다. 하루 3시간 근무가 고작이지만, 그 시간 때문에 하루 전체 일정이 묶인다. 주휴수당도, 4대보험도 없다.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청년정책 메카 광주의 역설, 초단시간 전국 1위
18일 광주광역시의회와 광주노동권익센터가 공동 개최한 ‘광주광역시 청년·청소년 초단시간 노동 실태 포럼’에선 광주 지역 청년·청소년 초단시간 노동 사례와 실태가 집중 조명됐다. 이날 김현미 광주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단 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발제문에 따르면, 주 15시간 미만 근로하는 청년(15~29세) 초단시간 노동자는 2022년 32만 5000명에서 2024년 34만 4000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청년 임금근로자 전체는 374만 명에서 353만 명으로 21만 명이나 줄었지만, 초단시간 노동만은 계속 늘고 있다.
전체 청년 취업자의 10%가 주 15시간도 안 되는 시간을 일하며 불안정한 노동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초단시간 취업자도 2015년 87만 명에서 2025년 174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쓰리잡 뛰었더니 학점 4점→2점 추락”
광주보건대 최다해(21) 씨는 그가 경험한 초단시간 노동의 악순환을 전했다.
“저는 매주 스케줄이 다르게 나오는 사업장에서 초단시간 노동을 했습니다. 하루에 4시간씩 배정받았는데, 근무 시간과 날짜는 전적으로 고용주가 정했습니다. 그에 따라 근무 시간과 월급이 불안정해졌습니다. 저는 친구와의 간단한 약속마저도 스케줄표가 나오는 1주일 전까지 잡기 힘들었습니다. 언제 잡힐지도 모르는 고작 주 8시간 이하의 노동시간 때문에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가지려고 계획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해 초, 초단시간 근무로 인해 수입이 적었고, 직접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저는 쓰리잡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발목 통증으로 걷기조차 힘들었고, 새벽 퇴근길에 저혈당 쇼크 직전 증상을 경험했다. 1학년 때 4점대였던 학점은 2학년 1학기에 2점대로 추락했다.
최 씨는 또 다른 문제도 지적했다. “사장님이 제가 다른 동료와 친해지자, 그 뒤로 단 한 번도 같이 근무하도록 스케줄을 짜지 않았어요. 초단시간 노동은 노동자끼리 연대할 기회조차 빼앗아갑니다.”
근로기준법 초단시간 노동 보호장치 배제
문제의 핵심은 현행 근로기준법이다. 법 제18조 제3항은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를 주휴수당, 연차휴가, 퇴직급여에서 배제하고, 4대 사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김현미 광주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원은 “사업주들이 비용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근로시간을 15시간 미만으로 조정한다”며 “법과 제도가 주 15시간을 기준으로 적용되면서 청년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조사 대상 청년의 30~40%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70% 이상이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사업장을 합치면 주 30시간 가까이 일해도, 각각이 15시간 미만이라 아무런 권리도 발생하지 않는다.
광주, 공공부문 초단시간 고용 1위
더 큰 문제는 광주광역시가 전국에서 초단시간 노동자를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전국 지자체 산하기관 및 민간위탁기관의 초단시간 노동자 2만 7940명 중 광주가 1355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김 연구원은 “광주는 청년정책이 활발한 도시지만, 청년참여·활동지원·행사보조 사업들이 ‘주 몇 회, 회당 몇 시간’으로 짧게 설계돼 있다”며 “공공부문에서조차 15시간 미만으로 쪼개 고용하면서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날 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온 롯데리아 염주점 최용근 대표는 20년 동안 청소년·청년 노동자들을 고용해온 현장의 경험을 전하며, “몇 년 전부터 모든 직원을 주 15시간 이상 고용하고 4대보험과 주휴수당을 성실히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처음엔 비용 부담이 10~15% 늘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잠깐 일하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동료가 됐고, 업무 숙련도도 높아졌다. 서비스 품질까지 자연스럽게 향상됐다.
최 대표의 매장은 광주시 청소년알바친화사업장으로 선정됐다. 그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은 못 줄망정, 쪼개기 고용은 하지 말자는 신념”이라면서도 “이런 고용이 확산되려면 4대보험 사업자 부담분 지원, 인증제 확대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시간 관계없이 권리 보장해야”
포럼에서는 구조적 개선방안들이 쏟아졌다.
김현미 연구원은 “청년 초단시간 노동의 확산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청년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불안정한 삶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여러 구조적 문제를 교정하며 재설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핵심은 청년이 일정 시간 이하로 일하더라도 동일한 노동권과 사회적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제도·행정체계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근로기준법 제18조 제3항 개정으로 15시간 미만 노동자도 주휴·연차·퇴직금 적용 △청년층 사회보험 바우처제 도입 △공공부문 모범 고용 기준 마련 △초단시간·플랫폼노동정책과 신설 등을 제안했다.
광주전자공업고 임동헌 교사는 “청소년들의 곤궁한 입장을 이용해 저렴한 임금에 사용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배려와 구체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며 "광주가 민주주의의 상징 도시인 만큼, 노동권 강화의 선두주자가 되어 청년들에게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초단시간 노동은 단순히 근로시간이 짧은 게 아니라, 청년들의 건강·학업·미래 전망을 모두 훼손하는 구조적 불평등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