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가슴에 묻은 어머니가 일군 민주주의 얼굴
임수정 작가 ‘민주화운동가 이오순 평전’ 발간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아요!”

 1985년, 독재에 항거하며 분신한 송광영 열사가 남긴 말이다. 그해 겨울, 가슴에 아들을 묻은 어머니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가.

 그 질문은 한 여성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돗자리를 메고 생계를 이어가던 어머니 이오순은 마침내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목소리를 잃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데 남은 생애를 바쳤다.

 도서출판 밥북이 펴낸 임수정 작가의 신간 ‘민주화운동가 이오순 평전-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는 바로 그 격렬하고도 순한 생애를 온전히 되살려놓은 기록이다. 책은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1990년대까지 숨 가빴던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견뎌낸 한 여성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을 “단순한 고통의 서사가 아니라 부활의 서사”로 복원해낸다.

 생존의 골목에서 민주주의의 광장까지

 이오순의 삶은 한 여성의 생애사면서 동시에 시대사이기도 하다. 가난과 억압 속에서 장사에 나서야 했던 청년기, 뜻대로 살아낼 수 없던 여성의 삶, 닥쳐오는 전쟁과 산업화의 파도, 그리고 ‘평화시장의 전태일’을 알아보았던 막내아들의 변화까지.

 책은 그 굴곡의 장면마다 당시의 사회 환경과 생활 풍속을 촘촘히 이어붙이며, 개인의 삶이 어떻게 시대와 얽혀 있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열사의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던 이오순의 굳건한 인간적 품위다. 생계를 위해 돗자리를 팔던 그는 어느 순간 광장에서 연설을 하는 사람이 된다. 슬픔을 넘어서 정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책은 그 변화의 과정을 치열하게 기록한다.

 “살아서 싸워라!”

 1985년 아들의 분신 후, 이오순은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경찰 저지선을 뚫고, 농성장을 지키고, 법정에서도 거리에서도 가장 앞줄에 섰다. 유가협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 이겨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은 남은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외침이기도 했다.

 책은 또한 ‘송광영 열사의 어머니’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이름 없이 싸우다 사라진 수많은 부모와 동지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낸다. 임수정 작가는 이 평전이 “누구보다 앞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지만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묻는 질문

 이오순은 살아생전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자신을 혹사하듯 움직였다. 그 마음은 지금 우리 시대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책은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 오늘,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경쟁과 불평등의 현실을 비추며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잇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송경용 신부는 추천사에서 “사랑의 힘이 어머니의 삶을 다시 일으켰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되었다”고 썼다. 그가 남긴 말처럼, 이 평전은 한 여성의 기억에서 시작해 우리 모두의 미래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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