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다시 제주로(1)
방역수칙 따라 4인으로 조직된 등반대

제주의 바다.
제주의 바다.

코로나로 안심이 되는 곳이 어디 있을까? 일상도 멈추고, 여행도 멈추는 시간, 여행이 처음으로 우리를 떠났다는 시간. 하지만 열망과 근질거리는 다리 근육은 저어할 길 없다. 그래 가자. 제주도로. 
그렇게 마음을 먹고 혼자 떠나기는 어려워 사람을 불러 모았다. 그러다 5인 이상은 집합 금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섯 명까지는 가능한 것으로 봤다가 입씨름이 붙었다. 4인까지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 무척 난감했다. 이런 무식한지고. 작년에 사흘간이라는 말이 3일인데, 4일 아니냐는 것으로 신문 지상에 떠들썩했던 기억. 나도 그 축에 속했던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아들을 포함해 후배 2명해서 4명은 금방 모였다. 전제가 있었다. 바로 한라산, 눈 덮인 한라산이 목표지점이다. 
6년 전 한겨울 오로지 한라산 등반에 중심을 두고 다녀왔던 기억이 선연하다. 성판악의 초입부터 길은 눈으로 다져져 있어서 정상까지 흙 한 점 묻히지 않고 산정에 오를 수 있었다. 20대 때부터 100회 이상을 올랐지만, 그때처럼 쾌적하게 오른 적이 없었다. 윗세오름에 1시까지는 통과해야지만 정상 안부를 오르는 기회가 허락되는 그날 12시 무렵 점심을 먹는데 바로 근처에 요란하게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급작스런 환자를 수송하는 일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함께 했던 동행과 함께 정상 등반은 지쳤지만 순탄하게 마쳤던 그런 예뻤던 기억이 또 떠오른 것이다. 
숙소는 후배가 1년간 임대해 두었다는 서귀포의 보목리로 정했다. 보목은 포구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까이 섭섬이 있다. 사방이 바위 벼랑이라 섬에 접근하기 어려워 섭섭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그리고 주변의 바닷속이 아름다워 스쿠버를 하는 이들이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고, 제주 사람들이 좋아하는 오분자기라는 조개 종류가 많이 나고 젓갈을 담그거나 방어낚시의 잇감이자 물회로도 유명한 자리돔의 산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포구에는 제주에 몇 개 남지 않은 한국형 등대인 도대불이 있기도 한 곳이다. 나는 그런 보목을 가끔씩 찾아갔다. 큰길에서 포구로 들어가는 길에 길섶에 자라며 파 모양의 잎새에서 피어나는 샤프란과 난초처럼 자라는 수선화가 아름다워서 인상적이었던 곳이 그곳이다. 베이스캠프가 있으니 나머지는 어렵지 않다. 차만 렌트하면 된다. 3일간을 풀로 임대하는데 6만 원이 안 된다. 

변함없는 매력 고등어회
그렇게 출발한 제주행은 항공요금도 저렴했다. 가는데 4만 원이 안 되고 오는 데는 일요일 오후라서 6만 원 정도이니 요즘 여행업계나 항공업계가 얼마나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방역을 위한 준비는 아들인 호연이가 담당하고 우리는 제주에서 만났다. 

고등어회.
고등어회.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언제나처럼 제주시의 건입동에 있는 속초식당이었다. 비린내가 가득할 것이라는 고등어의 선입견을 단숨에 제압해 버린 고등어회의 매력은 제주도나 통영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데다 이곳의 단골이 된 지 근 20여 년에 가깝게 되었다. 많아 봐야 일 년에 두서너 번 찾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장은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일 년 만이라고 하면서 코로나로 서로 힘든데 이렇게 건강하게 마주하니 좋다고 서비스로 물회까지 내어 주신다. 처음 먹어보는 후배는 어떻게 회가 입에서 사르르 녹느냐고 연신 함박웃음을 지어낸다. 
회와 찌개를 먹고 이에 차는 숙소를 향해 간다. 성판악이 있는 곳을 지나가는데 며칠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었음에도 길가에는 아직 눈이 그대로 남아있다. 고도가 있으니 한라산 정상으로 이르는 길에는 아마 이런 눈길이 계속되어 있을 것이다. 2일 후 등반이 자못 기대되었다. 
차량으로 가득한 성판악 휴게소를 보며 우리도 하루 1000명만 입산이 허용되는 그 행렬에 끼일 생각을 하니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여기가 제주도라는 것으로도 만족함이 드는지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노래를 듣고 나는 두 눈이 짓물러지도록 숙소의 창밖으로 들어오는 파도의 포말만 바라보았다. 
어느덧 어둠이 깔리고 우리는 차를 타고 요깃거리를 찾아 서귀포 올래 시장으로 갔다. 만석이었던 비행기의 기내에 놀랐듯이 시장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기존의 전통시장 관념을 깨 버린 우리나라의 몇몇 시장 이를테면 서울의 광장시장이나 부산의 자갈치 시장처럼 제주의 동문시장과 오늘 내가 찾은 서귀포의 올래 시장은 언제나 시민들에게 여행자들에게 환영받는 장소이다. 저렴한 가격, 싱싱한 상품들, 어지간해서는 모든 것을 다 구할 수 있는 곳이기에 우리는 3일분의 장을 이곳에서 다 보았다. 특히나 제철인 방어회나 고등어회도 저렴하여 마음껏 먹기로 하고 충분한 양을 사 왔다. 
나온 김에 식사마저도 이곳에서 해결했다. 제주 흑돼지를 선택했다. 여행의 막내인 아들내미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서 우리는 달리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매일 학원에 영상 수업에 지칠 법한 시간들. 어서 어른이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아들이 콧바람 쐬러 아빠의 행로를 따라왔으니 존중해 줌이 마땅했다. 

여행, 아들과 함께 한다는 건…
언제나처럼 흑돼지는 비싸고 맛은 별로였다. 다만 제주 특산이라는 것에 먹어줘야 한다는 것 말고는 나에게는 음식의 감응이 별로였다. 180g에 1만8000원이니 담양읍내 식당에서 파는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는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고기에 버금간다. 조금만 가격이 내려간다면 좋을 텐데 라는 기대를 하며 식당을 나와 숙소로 들어갔다. 
이제 우리는 술 한잔을 두고 공통의 일들에 대한 난상토론에 들어갔다. 술병은 계속 비워지고 이야기는 무르익고,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일방적으로 일상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밤이 깊어졌다. 휴전의 시간, 바람을 쐬러 방파제로 나간다. 비와 바람이 흩날리는 방파제에서 저 멀리 고기잡이하는 어선의 불빛이 마치 구원의 불빛처럼 보인다. 
좀 춥다 느껴져 다시 숙소로 올라와 남은 얘기들을 하는 와중에 나는 잠자리로 들어왔다. 새벽 세 시 설핏 잠에서 깨어 보니 아직도 격론은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로 함께 할 시간이 그만큼 없었다는 방증이리라 여기며 다시 잠이 들었다. 
오전 아홉 시 일어났다. 평소에 다섯 시면 일어나는 내가 여행이라는 해방구를 맞아 느슨해진 것을 오히려 반가워했다. 여행은 일상의 반복이 아니라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실천해 보아도 좋을 시간이기에 이마저도 소중했다. 밤새 토론을 했던 이들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창밖으로는 비가 주르륵 내리고 있다. 기상 예보는 오늘 밤까지 비가 내린다니 어디를 가는데 서두를 이유도 없다. 그냥 모두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갖도록 두는 게 상책이다 싶다. 
먼저 일어난 아들에게 함께 주변이라도 가자고 하니 동의한다. 멀리 생각할 필요 없이 부두로 가서 도대불이라는 등대와 섭섬을 저만치 보고 쇠소깍을 들려오면 얼추 점심 무렵이 되겠다 싶어 움직였다. 서양식 등대에 비해 작고 소담해 보이지만 테우라는 제주형의 뗏목 배를 타고 근해 어업을 하는 어부들에게는 생명의 빛과 같은 역할을 했을 한국형 등대를 보여 주었다. 아이는 등대보다는 그 옆에서 스쿠버 동호회 사람들이 입수할 준비를 하는 것을 더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아비라고 애써 주입할 필요는 없는 법이지만 귓등으로 흘려듣는 것이 조금은 서운케 느껴진다. 하긴 난들 아이의 얘기를 모두 귀담아듣기나 했던가 반문 혹은 자책하며 저게 섭섬이라고 하는 곳이야 하면서 차로 돌아왔다. 
이제 육지의 물과 바다의 물이 만나는 기수구역에 형성된 계곡의 연못과 같은 쇠소깍으로 향한다. 물빛이 너무나 청량하고 맑아서 거울과 같이 주변의 풍경을 담아주는 그곳에서 아이는 함빡 웃음을 짓는다. 육지에서는 쉽사리 만나지 못한 경관을 보게 된 것이다. 

도대불에 선 필자의 아들.
도대불에 선 필자의 아들.

명소일수록 한적…코로나 진풍경

정방폭포.
정방폭포.

주변을 산책하다 해변에 이르러 파도가 다듬어 놓은 둥근 돌들의 모습과 그것을 탑으로 쌓아 올려놓고 소원을 빌었을 이전의 여행자들이 남긴 흔적을 보며 검은 모래사장에 우리 부자도 발자국을 남긴다. 자연이 주는 이런 신기한 선물들, 그 앞에서 우리는 저 모든 것을 다 취하려는 욕심을 한껏 부리다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인수공통감염병에 위협받게 되어버린 현실. 난데없이 쇠소깍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마주치는 여행자들 모두는 마스크에 그 내면을 숨기고, 가쁜 숨을 쉬면서 하고 싶은 말도 참아내는 여행, 그들에게 우리 부자의 모습도 똑같이 안쓰럽게 보였을 것이다. 
빗발은 거세어지는데, 아들은 서귀포에는 폭포가 많다는데 폭포 하나 가자고 한다. 그래, 이쪽에는 천지연, 천제연, 정방폭포가 있고 많은 비가 내리면 폭포가 형성되는 엉또폭포도 있지, 그중에 우리는 바다로 폭포가 직접 내리는 동양에 두 개밖에 없는 정방폭포로 가자며 발걸음을 옮긴다. 십여 분만에 도착한 정방폭포 주차장에는 차들이 텅 비어 있다. 평소 같으면 사람들로 붐빌 곳인데 명소에는 사람들이 북적일까봐 대부분 기피한다는 것이 여기에서도 입증이 된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전세 낸 듯이 동백이 피어있는 계단길을 따라 폭포로 간다. 
아름답게 굽어 있는 소나무 사이로 내리쏟는 폭포수의 장엄함을 독점하여 아들에게 보여 주는 마음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흐른다. 
(이어집니다)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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