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30분이면 먹을거리 여행 가겠다
‘달빛철도’ 물리적 좁힘보다 정서적 효과 반겨
“도로 안좋아서 생긴 지역 감정 아니다” 냉소도
12일 대구 서문시장. 대구 최대의 전통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과거부터 보수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날 시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는 단연 4·10 총선 결과였다. 동서가 극명하게 갈라진 보수와 진보 정당의 표심이 화제였다. 시민들에게도 그 여파는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시장에 식사하러 온 시민 김도형(41) 씨는 “이번 총선에서 동서가 극명하게 나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남과 북도 갈라지고 동과 서도 나눠져있는데 이 좁은 땅덩어리에 함께 힘을 합쳐서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문시장 상인 노건택(69) 씨는 “상인들끼리도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빨간색, 파란색으로 딱 나뉠 수 있나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달빛철도가 건설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지역갈등이 해소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2030년 완공 목표인 달빛철도는 총연장 198.8㎞로, 광주송정역을 출발해 광주역~전남(담양)~전북(순창·남원·장수)~경남(함양·거창·합천)~경북(고령)~서대구역을 오간다. 6개 시도와 10개 시군구를 지나며 연관된 영호남 지역민만 1700만 명에 달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달빛철도는 7조 3000억 원의 생산 유발효과와 2조 3000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 3만 8000여 명의 고용 유발효과가 기대된다.
본보가 만난 대구시민들은 각종 유발효과에 대한 기대보다 물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던 영호남을 잇는 첫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정서적 효과를 반겼다. 현재 광주~대구 이동시간은 승용차로 2시 30분, 버스로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달빛철도가 개통되면 광주~대구를 이동하는 시간은 1시간 30분대로 줄어 반나절 생활권이 가능해진다. 이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영호남의 사람과 사람을 잇는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달빛철도의 종점과 종점인 광주와 대구는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교류가 적어 서로를 오해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구 2·28 공원에서 만난 정순애(77) 씨는 “젊은 시절에는 전라도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는데 살아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며 “대구의 2·28과 광주의 5·18처럼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다. 기차가 개통할 때가지 건강이 허락되면 꼭 한번 광주부터 순차적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전했다.
동성로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박태환(26) 씨는 “광주까지 가는 기차가 생긴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먹는 걸 좋아해서 진짜 전라도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데 막상 버스타고 가려면 너무 멀어서 그 시간이면 서울을 갔었다”며 “기차가 생기면 친구들이랑 종종 가볼 것 같다”고 웃었다.
이처럼 달빛철도를 통해 감정의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시민들도 많았다. “지금까지 철도가 없었다고 지역감정의 벽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다.
대구평화시장 닭똥집골목에서 만난 오태현(39) 씨는 “과거엔 지역감정이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오는 갈등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지금 SNS 댓글들 보면 전라도 욕, 경상도 욕하는 사람들 태반이 젊은 사람들이다”며 “여행 목적이라면 긍정적인 부분은 있겠지만 지역감정 해소 측면이라면 기차 하나로 풀기에는 너무 먼 강을 돌아온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서문시장에서 만난 이종희(61) 씨도 “기차 하나로 동서화합이 된다는 건 이상적인 이야기다”며 “광주-대구 고속도로가 생겼어도 화합은 전혀 안됐다. 정치인들이 치적 쌓기 위해 입발린 소리 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특히 총선 결과로 인해 달빛철도 자체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도 있었다.
동성로역 지하상가에서 만난 강주섭(83) 씨는 “전라도 사람들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쪽에 몰아줬다”며 “이 사람들이 철도 생겼다고 다른 당 찍을 것 같지도 않고,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세금만 낭비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냉소적인 반응이 없진 않았지만, 다수의 대구시민들은 광주를 방문하고 싶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광석거리에서 만난 이진주(20) 씨는 “광주랑 아무 관련도 없이 살아왔지만 SNS에서 서로 지역 욕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악감정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 같다”며 “서로가 서로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나부터도 광주를 잘 모르니 가서 맛있는 밥도 먹고, 관광지도 둘러보고 싶다”고 전했다.
카페 사장 이지훈(38) 씨도 “철도가 생겨나면 기본적으로 인구 유입이 많아질 것 같은데 매출도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기대도 크다”며 “대학생 때나 가보고 멀어서 광주를 가보지 못했는데 1시간대에 갈 수 있다고 하니 휴무날에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대구시민들에게 달빛철도는 기대와 희망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개통을 기다리고 있다.
전경훈 기자 hun@gjdream.com
